“내년 EU 의회서 북한인권 청문회 열 것”

브뤼셀에서 첫 일정은 유럽 의회 관계자들과 미팅이었다. 미팅은 유럽 의회 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인 하이디 호탈라(Heidi Hautala)가 주재하였다. 유럽 의회 의원들을 포함하여 20여명이 참여하였다.


해리스(Harris)란 이름의 한 유럽 의회 의원은 탈북자들이 중국에 와서 무엇을 느꼈는지 물어보았다. 탈북자 이성애씨의 답변은 그에게 꽤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이성애씨는 “중국에 와 보니 자유가 있어 좋더라” 는 답변을 했다. 사실 북한과 비교할 때 중국은 자유와 번영이 넘치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답변을 들은 유럽 의회 의원은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유럽적인 기준에서 보면 중국도 인권과 자유를 탄압하는 독재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독재 국가가 탈북자 입장에서는 자유가 넘치는 곳으로 비쳐진다. 이 말은 들은 그 의원은 북한의 실상이 어떤지에 대해 충분히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년 EU 의회에서 북한인권 청문회 열 것


미팅이 끝나고 위원장이 마지막 정리 발언을 하면서 우리 대표단은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유럽의회 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이 내년에는 EU에서 북한 인권 청문회를 열 것이라고 공약한 것이다.


개최 시기는 추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2006년 EU 산하 한반도위원회에서 탈북자들을 초청해 청문회를 연적은 있다. 하지만 인권소위원회 주최로 북한인권 청문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 된다. 아마 내년에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더 많은 유럽 의회 의원들과 민간 관계자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게 될 것이다.
 
유럽 의회 미팅이 끝나고 우리는 유럽 이사회(Council) 및 유럽 집행위원회 북한 담당자들과의 미팅을 가졌다. EU에는 크게 세 가지 조직이 있다. 의회(Parliment), 이사회(Council), 집행위원회(Commission)가 그것이다. 집행위원회는 말 그대로 집행 조직이다.


한국으로 치면 EU의 정부 조직 같은 것이다. 이사회는 정부간 협의체이다. EU는 일종의 유럽 내 국가간의 연합 조직이기 때문에 국가간 협의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협의체를 주관하는 사무국(Secritariat)이 존재한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이 유럽 이사회 사무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EU관계자 “북한인권 지원 기금 늘릴 것”


현재 북한 인권 단체들 중에는 EU에서 기금을 지원받는 단체들이 몇몇 존재한다. 필자가 소속된 열린북한방송도 EU에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필자가 만난 EU 인권 기금 담당자들은 당장은 쉽지 않지만 북한 인권 관련 지원 기금을 늘려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 상주하는 EU대표단과의 미팅도 적극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EU와의 미팅이 끝나고 우리 대표단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위치한 헤이그로 향했다. 원래는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오늘 하루 전체 기차가 파업을 해서 기차를 탈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헤이그로 가는 일반 차량을 렌트해야 했다. 원래 기차로 브뤼셀에서 헤이그로 가면 1시간 정도면 간다고 한다. 그러나 기차 파업으로 도로에 차량이 몰려서 도로 사정이 아주 좋지 않았다. 기차 파업으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우리는 3시간 걸려 가야했다.


“그 아바이 참 대단하다”


우리는 헤이그에 가까스로 도착한 뒤 한인 식당을 찾아 식사를 했다. 순두부 찌개와 육개장이 꿀맛이었다. 너무 바쁜 일정이라 점심은 거의 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때웠다. 이성애 선생은 음식이 안맞아 무척 고생을 하셨다. 그러던 차에 한국 음식을 보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니 거의 10시였다. 우리는 바로 호텔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첫 만남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또는 다른 고위 인사와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국제형사재판소 측은 송 소장은 워낙 일정이 많아 미팅이 안될 수도 있다는 단서를 달았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 10시가 되니 송 소장님이 실무자 두 사람을 대동하고 우리를 맞이하였다.


송 소장과의 미팅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안타깝게도 미팅 내용은 비공개하기로 국제형사재판소 측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 공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송 소장은 참석한 필자와 두 분의 탈북자를 아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제기한 질문에 실무자 입을 빌리지 않고 거의 모든 대답을 직접 친절히 해주셨다. 한국말로 말이다.


송 소장과 미팅이 끝나고 이성애 탈북자 분이 한마디했다. “그 아바이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에서 소장을 하나?” 그렇다. 권위있는 국제기구에 한국인이 수장으로 있으니 기분이 달랐다. 그 곳 직원들도 우리를 맞이하는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올 해는 한국 외교가 큰 힘을 발휘하는 해인 것 같았다. 가장 권위있는 국제기구 두 곳의 수장이 모두 한국인이 아닌가. 유엔의 반기문, 국제형사재판소의 송상현. 대한민국의 저력이 느껴졌다.


고발장 접수하면 바로 예비조사 들어갈 것


송 소장과의 미팅 뒤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검찰부와 미팅이 이어졌다. 검찰부에는 법률 자문이 나와 우리의 질문을 받아 주었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우선 국제형사재판소가 김정일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였다. 검찰부의 답변은 예비 조사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검찰부에서 기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1단계 예비 조사를 한다. 예비 조사에서 이 사안이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 영역에 속한다고 판단되면 공식적인 조사를 진행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예비 조사가 가능하다는 답변만으로도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예비 조사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대한 압박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예비 조사에서 정식 제소로 가기에는 또 많은 단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첫 단계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비 조사가 끝나면 틀림없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도 범죄는 아주 심각하다는 우려 표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가장 권위있는 국제기구가 공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클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에도 감옥이 있다


검찰부 관계자와 면담이 끝나고 우리는 재판소 건물을 둘러 보았다. 재판장도 가보았다. 지금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콩고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재판소는 일반 시민이 참석해서 재판 진행 과정을 방청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우리는 재판소를 보고 나서 국제형사재판소 구치소를 방문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재판받는 동안 피의자를 구금하기 위해 구치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그 구치소에는 콩고 반군 지도자였던 토마스 루방가 등 14명의 수감자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감옥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아마 김정일도 언제인가는 이 감옥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헤이그에 온 이상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이준 열사가 묵었던 호텔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시간이 빠듯해서 기념관에 들어가 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기념관 명패를 배경으로 해서 기념 사진만 찍고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필자는 탈북자 정광일씨에게 “당신이 우리 시대의 이준같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사실 그렇다. 당시 이준 열사가 일제의 폭압에 맞서 싸운 사람이라면 지금 정광일씨 같은 탈북자는 김정일의 폭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준 열사처럼 이국 땅을 돌면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일정으로 네덜란드의 ANP통신과 인터뷰를 했다. ANP 통신은 한국의 연합 통신과 유사한 것이다. ANP 기자는 주로 이성애씨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질문은 ANP 기자가 이성애씨에게 “만약 이 자리에 김정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필자는 이성애씨가 어떤 답변을 할지 자못 궁금했다. 혹시 “김정일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 예상을 완전히 깬 답변이 나왔다. 이성애씨는 말했다.


“김정일이 죽을 때까지 패줄거에요”


아주 당찬 대답이었다. 그리고 아주 통쾌한 대답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필자가 이선생에게 다시 여쭈어보았다.


“아니 김정일이 바로 앞에 있으면 겁나지 않겠어요?”
“김정일 혼자 있으면 겁나긴 뭐가 겁나는가, 그 나쁜 놈 때려 죽여야지”


아마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 중에도 이성애씨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령 김정일이 아니라 인간 김정일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존경심도 자아내지 못하고 두려움도 자아내지 못하고. 그 저 나쁜 놈,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 북한 주민에게 김정일의 존재감은 그렇게 의미 없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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