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에도 북한에 대한 국내외의 최대 관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따른 북한 권력구도의 변화 여부와 방향에 집중될 전망이다.
지난 8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뒤 그가 최근엔 험준한 자강도에서 수일간 현지지도를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고 있음에도 그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국내외 정보 소식통들의 일치된 관측이다.
이와 관련, 정부의 고위 소식통도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북한의 근원적인 권력구조의 변화 징조는 뚜렷하지 않지만, 김 위원장 주변의 권력구도에는 의미있는 변화가 있다는 것이 한미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의 내용이나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이 변화가 굉장히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만 말했지만, 김 위원장 ‘주변의 권력구도’에서 장성택 부장으로 힘이 쏠리고 있는 것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이 쓰러지자 신속하게 치료 대책을 세우는 등 노련하게 위기관리를 주도했으며 노동당과 군부의 권력층도 공통의 위기의식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없이 장 부장의 지휘에 철저히 ‘복종’하고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쓰러지기 전엔 김 위원장의 네번째 부인인 김옥의 영향력이 상당했지만, 김 위원장의 와병에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김옥씨의 위상은 반감되고 장 부장의 역할이 급상승했다는 것.
특히 김 위원장은 평양과 원거리 지방 시찰을 이어갈 정도로 건강이 상당히 호전된 최근에도 여전히 국정관리를 장 부장에게 위임하고 있다는 전문이다.
주요 현안에 한해 장 부장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임이 절대적이어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정도라는 것.
이에 따라 내년에도 장 부장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일상적인 국정을 운영하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김 위원장 ‘주변의 권력구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현 국정운영 방식이 표면으로 드러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정보소식통들의 지적이다.
절대 권력자인 김 위원장이 생존해 있는 한, 그리고 김 위원장이 장 부장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내부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이상 북한에서 어떤 권력구도의 변화를 외부에 노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올해 하반기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후에도 김 위원장을 정점으로 하고 당과 군부내 김 위원장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종래의 권력구도 틀엔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더우기, 장성택 관리체제는 언제 어떻게 뒤집어질 지 알 수 없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인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30년을 사실상 절대 권력을 행사해온 만큼 권력 집착이 누구보다 강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왼쪽 신체의 마비는 상당히 호전됐으나 우울증, 의심 등의 정신적 후유증도 예상된다. 따라서 자신의 권력이 장 부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의심이 들 경우 장성택 관리체제는 언제든 ‘회수’될 수 있다.
과거에도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의 유일한 형제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인 데다 김 위원장의 남다른 신임을 받는 관계로 주변에 늘 사람들이 모였으나, 이것이 김 위원장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쳐져 수차례 처벌을 맛봐야 했다.
이 때문에 장 부장은 설사 현재 김 위원장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의지는 철저히 배제한 채 김 위원장의 의도를 오차없이 이행하는 데 진력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의 와병설 이후에도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김 위원장의 기존 ‘교시’와 정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보수화하는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결국 현재 장성택 부장을 중심으로 한 북한 권력층의 구도는 아주 불안정한 셈이다.
아울러 내년에도 김 위원장의 후계자 선정이 이뤄질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후계자 선정시 김 위원장의 권력상실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김 위원장은 아들로의 권력세습에 여전히 상당히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 부장을 비롯해 측근들도 김 위원장에게 후계문제를 건의할 경우 김 위원장의 권력을 노리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몸사리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 부장 자신도 후계문제에 대해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변심’만 없다면 현재의 장성택 관리체제가 시간이 갈수록 후계체제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나 장 부장의 입장에선 후계문제를 구체화하는 것을 빨리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으로선 후계자가 결정되고 권력을 놓는 순간 허수아비가 될 것이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과 정신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절대로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운영에서 당분간 장 부장의 역할이 계속될 것이나 김 위원장과 장 부장은 현재 후계자라기보다는 신임을 주고받는 상하관계이기 때문에, 장 부장은 자신의 위상이 잠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방어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장 부장은 자신을 김 위원장이 몰아내려 해도 쉽게 몰아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