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이유

▲ 중국 공안에 끌려가는 탈북여성

1998년, 공포에 떨며 울던 아이를 등에 업고 두 번째로 찾아간 중국은 단 몇 달 만에 나의 순진한 기대와 믿음을 깡그리 날려버린다.

중국은 거대한 땅을 하나의 탈북자 색출장으로 만들어놓고 북한으로부터는 달러를 받는 대가로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탈북자들을 붙잡아 인간의 피에 굶주린 북한 보위요원들에게 잔인하게 넘겨주는 곳이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 땅 한가운데에 북한 보위요원들을 들여놓고 그들로 하여금 탈북자들을 공공연하게 붙잡아가는 횡포를 허락하고 조장시키고 있었다.

중국 당국은 죄라면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밖에 없는 그들의 초보적인 생존과 인권에 대해서는 티끌만큼의 안중에도 없었다.

인신매매와 폭력에 쓰러져가고

중국에서 특히 탈북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으며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북한에 그대로 앉아 맥없이 굶어죽느니 반역의 누명을 쓰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에게 며칠만 기다려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탈북한 여성들은 하지만 중국 땅에서조차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

중국에서 반실업자와 결혼을 당한 나는 보호자로 여겼던 그 남자로부터 밤낮없이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해 조금만 더 있으면 불구가 될 상황이었고, 세 살 난 아들은 정신이상이 될 정도까지 이르렀어도 한 마디 하소연 할 데가 없는 곳이 바로 중국이었다.

견디다 못해 이틀을 줄곧 매를 맞던 피투성이 속옷 차림으로 아들을 안고 사자굴 같은 그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교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우리 모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은 언제 닥쳐들지 모를 중국 공안의 체포위험이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식량을 구하려 왔던, 얼굴이 예쁜 한 탈북 여성은 중국인 인신매매범에게 붙잡혔는데 그 자는 그녀를 제 집 창고에 가두어 넣고 온갖 잡놈들을 매일 밤낮으로 들여보내 겁탈을 일삼게 하였다.

교회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구원된 그녀의 입에서 흐느끼고 흐느끼다 나온 첫 말은 이러했다.

“도강할 때…… 몸 버릴 각오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이제 내가 무슨 낯으로 남편한데 다시 돌아갑니까?…… 2~3일 후면 온다고 했는데 벌써 두 달 넘었으니……. 가족들은 다 굶어 죽었을 텐데.”

또 역시 식량을 구하려 왔다가 성 매매 조직에게 붙들려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한 탈북 여성은 심경을 묻는 한국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설사 내가 여기서 빠져나간다 해도 이 몸으로 남편한테 어떻게 다시 갑니까?”

약자에게 더욱 잔인한 중국

중국 – 그 앞에서 약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강자인 북한의 살인정부에겐 그렇게 의리 깊고 온순한 모습이었으나 연약한 탈북자들에게 중국정부가 보여준 것은 총부리와 족쇄, 감방, 채찍, 고함, 강간, 죽음의 땅을 향한 강제소환차량 뿐이었다.

어떤 지역의 중국 경찰은 잡아들인 탈북여성을 놓고 그 지역주민과 인신매매까지 하곤 하였다.

드넓은 중국 땅 가는 곳마다 탈북자들의 절규가 피처럼 고이고 원성이 하늘 끝까지 사무쳤는데 이미 인간에 대한 정이 메말라버린 중국은 몸은 있으되 얼은 없는, 마음은 있으되 의(義)가 없는 그러한 비대한 덩어리일 뿐이었다.

정의가 상실된 비곗덩어리의 대륙에서 굶주리는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들어왔던 탈북 여성들은 인간의 마지막 빛줄기인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없어져 인생의, 인간성의 영원한 방랑자로 되고 만다.

간혹 TV를 통해 중국에서 들려오는 사랑이야기는 그 나라의 본성을 뼛속 깊이 체험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생소할 수밖에 없어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정말이지 중국이라는 땅은 탈북자, 특히 탈북 여성들에겐 ‘인간의 애정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살아생전에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

언젠가 내가 잘 아는 한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혹시 중국 갈 일이 없냐고 그냥 스치듯 물어오셨다.

그런데 내 입에서 이미 준비라도 되어 있었던 듯 “갈 일도 없고 갈 시간도 없습니다.”고 딱 부러진 답이 바로 나오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당황하고 말았다.

워낙 신중하셔서 말 한마디도 아끼는 분인데, 또 그 분 부탁이면 설사 계획에 없는 일이라도 들어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나였는데 그렇게 무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아연해질 뿐이었다.

나는 나의 이 새로운 현상의 발견에 한동안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예기치 못했던 돌발적 태도는 무엇 때문에,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나의 온 몸과 마음이 ‘중국’이라는 그 이름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은 탓이었다.

아직까지 중국에서의 상처를 씻을 수 없는 듯 나의 내면은 온 힘을 다해 ‘중국’ 그 이름에 끊임없는 반항을 하는 것이리라.

언젠가 한국에 온 한 탈북 남성이 중국에서 은신해있던 마을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라면 내 눈물이 피처럼 얼룩진 땅, 나의 정신에 ‘인신매매’의 낙인을 찍어놓아 나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겨놓은 원한의 그 장소들을 돌아보는 일은 절대로 내 생애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와 내 아들의 몸을 이룬 수십조개의 세포가 중국을 향해 터뜨리는 저주와 분노의 고성을 들으며 중국을 떠나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도, 뜻하지 않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면 ‘중국’이라는 그 이름이 상처로 다가와 그 사랑조차 온전히 안을 수 없도록 나를, 내 온 몸과 마음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다.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저서 :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

– 김형직 사범대학 졸업
– 1998년 탈북
– 1999년 한국입국
– 現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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