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문한 나라 중 가장 섬뜩했다”

“히틀러의 독일을 방문한 유대인의 느낌이었다.” “깔끔하고 질서있는 평양의 모습이 좋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1일(이하 현지시간) 북한 당국의 입국 허용 방침에 따라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관광객과의 동행기를 본판 1면 톱기사로 상세하게 전했다.

전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유독 다가가기 힘들었던 북한 땅을 밟기를 소망해오던중 마침내 입국 기회를 잡은 5명의 열혈 여행객과 동행한 브루스 월러스 기자는 이들의 도착에서부터 귀국까지 함께 하며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북한의 모습을 적었다.

4박5일의 일정으로 평양에 도착한 미국 관광객들이 둘러본 곳은 지난 1994년 사망한 이후에도 여전히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기념관들과 시범 학교, 미군의 잔학상 등을 전시해놓은 전쟁박물관 등.

이들은 또 관광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했고 1968년 북한에 의해 나포된 미해군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둘러볼 기회도 잡았다.

5일간을 결산하며 관광객들이 한결같이 지적한 문제점은 안내원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던 점.

1965년 동독을 방문한 이후 40년만에 공산국가를 찾은 돈 패리시씨는 “엄격히 통제되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연 어느 정도로 통제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관광객들이 맨 처음 들른 곳은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는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

모든 관람객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경의를 표시했고 미국 관광객들도 머리를 조아렸다.

조 워커씨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와 관련, “불편함을 느꼈다. 공산국가에서 만든 동상에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지만 기아와 궁핍함, 국제적 고립을 가져온 장본인에 대해 고개를 숙인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히틀러의 독일을 방문한 유대인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관광객이자 미국인으로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어글리 아메리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여행 2주전 심장 수술 때문에 우크라이나 여행중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상태였지만 이번 여행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몬티 앤더슨씨는 “북한 관계자들과 주민들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많이 실망했다”며 “한번은 안내원들과 밤 늦게 함께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공식적인 대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 관광에 5일은 충분했다. 더 머물렀더라면 가슴아팠을 것”이라며 평양에 도착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도착 즉시 엽서를 써보냈고 평양 공항 도착때 북한 이민국 관리가 여권에 스탬프 찍기를 거부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글렌데일에 사는 조앤 유맨스(80) 할머니는 비무장지대에서도 아주 평범하게 생활하는 모습, 질서있는 평양 시내 길거리 모습에 좋은 인상을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이 죽은 68세가 되어서야 외국 여행을 시작했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이 마흔에 대학에 진학, 54세에 박사학위를 딴 `늦깎이’ 유맨스 할머니는 “사람들은 단정하게 옷을 입고 건강해 보였다. 언젠가는 강대국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빌 앨터퍼씨는 빨리 내 조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내가 방문했던 나라 가운데 가장 섬뜩했다”며 “다른 곳에서 5일을 보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김일성 묘를 봤으면 했는데 기대이하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집에 돌아가서 아마도 평양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며 “왜냐하면 친구들이 평양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지난 1995년과 2002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관광객들의 입국을 두 차례 허용한데 이어 이번에 미국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했다./로스앤젤레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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