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평양의 겨울나기’

올 겨울은 북한에도 맹추위가 불어닥치고 있다고 한다. 평양시민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평양시는 김정일의 도시건설계획 구상에 따라 전쟁이 끝난 후 지은 연탄식 아파트들을 허물고 70년대 천리마거리와 북새거리, 80년대에 창광거리를 중앙 난방식으로 건설했다.

시내의 난방은 평양화력발전소(이하 평화력)에서 나온 증기로 공급하도록 되어있다. 평화력은 동평양화력발전소(이하 동화력)와 함께 주민세대들에 난방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화력발전소들이다. 평화력은 대동강 이북지역을 담당하고 동화력 대동강 이남지역 통일거리, 광복거리의 난방을 보장한다. 그것은 평화력의 온수가 대동강을 통과하면 식어져 열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화력은 체코제 발전기 4기로 가동되어왔지만 석탄이 딸리고, 저열탄이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2기만 가동하여 왔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평양시의 중앙기관과 주민 가정용 조명으로 이용되고, 증기는 관을 통해 중앙난방으로 각 가정에 공급된다. 광복거리와 통일거리가 건설되면서 동화력이 1990년에 병행되어 건설되었는데 이후에는 가동이 되지 못했다.

평양시민들 겨울에 비닐주머니 속에서 자

96년에 나도 통일거리에 갔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같다. 친구아버지가 국가보위부 국장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지 않고 ‘뱀이 허물벗듯’ 몸만 빠져 나오는 것이다. 저녁에 잘 때는 아침에 두었던 이불 속의 비닐주머니 안으로 다시 들어가 잔다. 체열을 보존하기 위해 그대로 두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와 떨어져 자기 시작한지도 오래다.

아파트는 돌집이어서 겨울에 얼기 시작하면 완전히 냉장고다. 통일거리아파트는 보통 20~30층의 고층 아파트인데 당시도 겨울에는 창문의 유리를 빼고 가정마다 연통이 생겨나고 있다. 연통으로는 밤에 집안에서 장작불을 때 연기가 뿜어 나온다. 중앙의 일꾼들도 지방에 내려갔다가는 장작을 차 트렁크에 싣고 들어와 난방으로 사용한다.

평양시도 식량난으로 아우성이다

평양시는 김일성 시절까지 일일 공급, 주 공급 체계가 잡혀있어 하루에 어른은 쌀 700g과 닭 알 한 알, 채소 등이 그 나마 보장됐다. 그래서 평양시에서만은 교외에 농민 시장 두 곳만 허용하고 엄하게 시장을 규제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제대로 배급이 안되어 인민들이 생활고에 아우성을 치자, 부분적으로 농민시장을 허용했다. 그런데 농산물만 팔게 하고 공산품은 못 팔게 했다.

식량공급도 기관마다 다르다. 특수기관인 노동당간부들과, 보안성, 보위부 일꾼들은 직권을 남용하여 일년 먹을 식량을 미리 농장에서 끌어다 창고에 쌓아두고 먹는다. 그 외에 군대들은 군량미로 충당하고, 영예군인들 까지도 어지간히 배급된다. 그 밖의 주민들은 15일분으로 한 달을 쪼개먹어야 하고, 지금은 한 달에 3일밖에 주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2002년 7월 1일 경제개선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물가를 폭등하는 등 가혹한 경제난을 만들었다. 7월 1일 경제개선 조치 이후 노동자의 한달 월급이 100원 에서 2,000~ 3,000원으로 올라간 대신 물가는 100~500배로 껑충 뛰었다. 시장에서는 쌀 한 킬로그램에 600~700원으로 올랐고, 돼지고기는 2000원으로 올랐다. 결국은 노동자 한달 월급으로 돼지고기를 한 킬로그램 산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가난할 수록 추위가 원망스럽다”는 말이 있다. 가뜩이나 동장군의 위세가 대단한 이 겨울을 북한인민들은 어떻게 이겨내낼 수 있을까?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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