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차량전복 등 역경 딛고 망명 성공한 北외교관

북한에서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을 지낸 엘리트 관료가 1만 번의 사선(死線)을 넘어 대한민국에 망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근 발간된 ‘만사일생(바른기록 刊)’의 저자인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무역서기관으로 5년, 무역참사(외교관)로 6년, 과학참사로 2년 동안 북한 외교관을 지내다 자유를 찾아 탈출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큰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쓰라린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홍 위원장에 따르면 북한은 외화부족으로 인해 1970년대부터 재외공관에 대한 자금지원을 축소했고, 재외 북한 공관들에 자체적으로 공관 운영경비를 조달하도록 했다. 특히 북한 당국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외교관들의 특권을 이용, 이들을 각종 물품에 대한 밀수행각을 벌이도록 하는 외화벌이 일꾼으로 내몰았다.


홍 위원장은 책을 통해 외교행낭에 보석, 상아, 코뿔소 뿔, 와인, 코냑, 금괴, 달러 뭉치 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다 담아 운반 유통시키면서 차액 또는 수수료를 벌어들였고, 그것을 최고통치자에게 충성자금을 보내는 등의 외교활동(?)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외교관들의 망명 등 혹시 모를 체제 이탈에 대비해 가족 중 일부를 북한 현지에 반드시 체류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북한식 ‘인질 정책’인 셈이다.


홍 위원장은 외교관들이 충성자금을 보내는 외화벌이 일꾼으로 전락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 1990년대 중반 발생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김일성의 시신을 보존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쓰는 북한 정권에 대한 자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으로 망명을 시도하게 됐다고 서술했다. 


홍 위원장은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는 것은 북한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그것이 국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뀌었다”면서 “그런 돈을 죽은 사람(김일성)에게 쏟아 붓지 않고 식량을 사들여 주민에게 먹였다면 굶어 죽는 참사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책은 또 태국 대사관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북한의 통제를 뿌리치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오던 날의 긴장과 곡절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홍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원들에 체포돼 라오스 국경으로 이동하던 중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고 두 번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후 태국 난민보호소에서 제3국 망명을 추진하던 홍 위원장 가족에게 한국으로 와서 통일과 북한민주화를 위해 함께 일하자고 적극 조언하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고(故) 황장엽 북한 전(前) 노동당 비서이다. 당시 황 전 비서는 홍 위원장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극적인 탈출 성공을 ‘구사일생’이 아닌 ‘만사일생(萬死一生)’이라고 표현했다.


책은 홍 위원장이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북한 정권의 독재를 반대하는 북한민주화 길을 걸으며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홍 위원장은 대한한국 땅에서 북한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황 전 비서에 이어 현재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북한민주화에 대해 그는 “북한민주화 운동의 첫걸음은 북한의 인권 문제다”면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 인권 문제는 한국의 주도 아래, 국제사회의 협력으로, 관련국들이 탈북자들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해나가야 한다. 그런 흐름이 정착되면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담론에 대해 홍 위원장은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토대 위에서 철저한 준비를 거친 통일만이 진정한 대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철저하게 준비되고 빈틈없이 실행된 ‘경제 주도형’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북한 집권 세력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개방은 민주화를 거쳐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가야 통일이 대박이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