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망명.노벨상 수상..DJ의 해외역정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거목인 동시에 인권과 민주주의, 통일을 향한 남다른 신념을 갖고 실천하며 지구촌의 주목을 받은 `세계적’ 지도자였다.

정권의 탄압 속에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겪으며 적지않은 기간 국외에서 생활해야 했던 김 전 대통령에게 해외의 낯선 땅은 역경과 시련이 있지만 미래의 영광이 교차하는 땅이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0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식 참석은 로비설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장 영광스런 순간으로 기억됨과 동시에, 노벨상 수상을 염원해온 우리 국민들에게 `단비’와 같은 선물이기도 했다.

이 같은 영예를 누리게 된 데에는 그가 평생 보여온 민주주의에의 헌신과 그 과정에서 쌓아온 세계 정치 지도자와의 교분이 밑거름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오랜 망명 생활 속에서도 조국 민주화의 열망과 평화 통일에 기여하고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부분 타의로 이뤄진 외국생활에서 김 전 대통령은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국제적 교분을 쌓는 한편,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향한 신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유신 직후인 1972년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인 1982년, 정치적 탄압을 피한 두 차례의 망명 기간은 그에게 고된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에게 민주주의 전파를 희망하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으며 정치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사를 오가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그를 지탱해주고 사선에서 구원해준 이들은 이 같은 국제적 인맥이었다.

1973년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납치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당시, 또 1981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에도, 각국의 외교적 압력, 저명인사들의 구명운동은 국민의 눈과 귀가 가려진 상황 속에서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됐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전 수상은 1973년 중정 납치 사건과 1981년 내란음모 사건 등 그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마다 항의서한을 보내 그에게 힘이 돼줬다. 최근 공개된 미국 망명 도중 김 전 대통령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수상이 나눴던 서신은 이들의 교분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내란음모 사건 당시 서한을 통해 국제적 압력을 행사한 대열에는 교황 고(故) 요한 바오로 2세도 동참했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 그와 교분을 나누며 도움을 줬던 국제적 명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미국 망명 시절,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재미한국 인권문제연구소를 창설하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맡는 등 활발한 반정부 활동을 벌이며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후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거쳐 복권된 뒤 두 차례 대선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거푸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권교체 좌절 책임론에 봉착하는 등 인생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선택한 카드는 `정계은퇴 이후 영국행’이었다.

이번만은 자신의 의지로 해외땅을 밟은 김 전 대통령은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스스로를 추스리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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