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아버지 한 맺힌 기다림 40년

“아버지 유골이라도 모셔와 어머니와 합장해 드려야 하는데..”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55) 대표는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40년 전 납북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목이 메였다.

그의 부친 최원모(1910~1970)씨는 어선 ‘풍북호’ 선주로 1967년 6월 배를 타고 서해 연평도로 나갔다가 납북된 후 소식이 끊겼다. 올해는 부친이 납북된 지 40년이 되는 해.

“아버지가 납북될 때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처음에 어머니나 형이 쉬쉬하다가 3개월 후에 알려주시더라구요. 평소에 배를 잘 안타시다가 하필 그날 나가셨는지..이후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부친은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으로 6.25전쟁 당시에는 미군 켈로(KLO) 부대에 소속돼 백령도에서 군수물자와 중공군.인민군 포로를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 전력 탓에 풍북호의 다른 선원과 달리 부친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최 대표는 짐작했다.

유복했던 그의 가족은 부친의 납북 후 이전과 180도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남아 있던 두 척의 배는 물론 집도 뺏기고 어머니는 생선을 팔러 시장으로 나서야 했다.

최 대표는 ‘납북자의 아들’이라는 주위의 시선과 연좌제로 고통받다가 1989년 연좌제가 폐지되면서 수협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어릴 적 음악 듣기를 좋아해 아버지가 전축(축음기)을 사주셨어요. 그것마저 빚쟁이에게 뺏겼죠. 아버지가 용돈을 넉넉히 주면 고아원 친구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던 때가 어제 같아요. 2005년 돌아가신 어머니가 30년 넘게 너무 고생하셔서 죄스러운 생각 뿐입니다.”

최 대표는 2000년에야 부친이 1970년 북에서 처형됐다는 소식을 한 탈북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2002년 4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녘 동생들을 만나면서 정부에 남편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확인불가’ 통보를 받았다.

아버지의 처형 소식을 듣고 납북자가족모임을 결성한 최 대표는 이재근(2000년 귀환)씨를 시작으로 지난달 최욱일씨까지 5명의 납북자를 탈북, 입국시켰다. 북한과 중국에 있는 정보망을 통해 130여 명의 납북자 생사확인도 했다.

최 대표는 그러나 “지난 7년 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지만 제대로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다”며 “정부는 북한에 납북자의 생사확인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의 납북 40주년을 맞아 금강산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방문(3.5~7) 신청을 했지만 통일부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았다. 최근 최욱일씨 송환 건도 있어 신변 안전을 위해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

최 대표는 이에 대해 “2003년 9월에도 금강산을 방문해 구룡폭포에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면서 “오는 26일 이 문제에 대해 통일부를 항의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