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남편 35년 기다린 할머니의 선택

1972년 서해안에서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다 북한 경비정에 납북돼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했던 할머니가 남편을 그리워하다 음독,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시간대 뉴스에서는 탈레반에 납치된 인질들의 전원 석방에 합의했다는 속보가 떴다. 풀려난 인질들의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모두 기뻐했다. 그러나 이 납북 남편을 둔 아내의 죽음은 주목받지 못했다.

숨진 유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적십자사로부터 ‘납북된 남편이 숨졌다’는 통보를 받고 매우 상심해 영정까지 준비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족들은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삶의 의미를 놓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할머니의 남편 박두현 씨는 72년 12월 28일 오대양 62호를 타고 서해안에서 고기잡이하다 오대양61호와 함께 납북됐다. 61호 선장은 유 할머니의 오빠 경춘(사망·당시 45세)씨였다. 오대양 61호와 62호에는 16명과 8명의 선원이 각각 타고 있었다.

이렇게 박 씨가 납북된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유 할머니와 그의 가족들은 지난해 10월 적십자사로 부터 사망사실을 통보 받기 전까지 박 씨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35년이란 시간을 남편의 생사조차 모른채 살아야 했던 유 할머니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을만 하다.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인해 고통을 받은 것은 비단 유 할머니 뿐만이 아니다. 현재 6·25 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납북된 숫자는 모두 3천790명으로 이 중 3천300여명이 귀환했으나, 미귀환자도 480여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북한에 납치돼 납북자와 그의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오히려 ‘연좌제'(緣坐制)라는 무형의 형벌로 가족들을 괴롭혔다. 여기에 우리사회는 매카시즘적 반공주의로 가족들의 가슴에 못질을 해댔다.

지금은 우리사회가 민주화되고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시선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내면 속에 응어리진 고통의 크기를 헤아릴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다. 다만 무관심해졌다고 하는 게 좀 더 사실에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

분단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인 납북자와 그의 가족들은 지금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들은 탈레반 인질구출도 중요하지만 북한 당국에 납북자 송환 요구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진돗개와 풍산개도 오고 가는데 납북자는 못오느냐’는 구호마저 외칠까. 유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납북자 송환 집회에 만사를 제쳐두고 참여했다고 한다.

납북자 가족단체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라고 공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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