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송환만이 근본 해결책이다

지난 8일 북한의 권호웅 내각 참사가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왔다. 통지문의 요지는 북한에 납치·억류된 김영남을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이산가족상봉’ 차원에서 만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김영남은 1978년 북한에 강제 납치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는 1977년 열세살의 나이에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기도 하다.

가족들은 북측의 제안을 적극 환영하고, 9일 상봉을 희망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통일부도 6월 말 가족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족의 선택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다. 병든 팔순 노모가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그 인정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가족 상봉이 가족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납북자 문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단체와 정부는 신중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북측의 제안을 덜컥 물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은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말려드는 지름길이다. 원칙을 다시 점검하고 유연하면서도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번 김씨 상봉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판단이 뒤따라야 된다고 본다.

첫째, 납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노력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한다. 납북자 문제는 북한 당국이 민간인을 납치한 범죄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범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란 범죄 행위자의 사죄와 행위자 처벌, 그리고 가능하다면 행위 이전으로의 원상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 공식사과와 배상, 원상회복이 유일 해결책

납북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사죄, 납치를 당한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한 배상, 납치를 당한 사람의 송환 등이 차례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다. 이 프로세스에서 벗어난 의제나 방법으로 납북자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더 엉켜버릴 가능성이 높다.

둘째, 납북자 문제를 역사 속에 묻어 버리려는 북한의 노골적인 정치작업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산가족상봉’ 대상자에 납북자를 포함한 것은 남한 당국의 납북자 관련 요구를 적당히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납북자 문제를 당분간 남북 간의 주요 의제에서 제외하고, 납치 문제를 ‘이산가족상봉’ 문제와 섞어 납치 문제의 성격을 희석·변질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이번 통지문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6주년을 맞이해 “김영남과 귀측에 있는 어머니의 상봉”을 특별히 마련한 것은 “동포애와 인도주의” 때문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명백한 범죄행위인 납북자 문제를 ‘인도주의 문제’로 변질시키겠다는 속셈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은 김영남씨 가족의 상봉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80이 넘는 노모 최계월 씨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남는 방법은 김영남 씨의 상봉과 무관하게,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사죄와 배상,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가 완결될 때까지 남북 간의 주요 의제에서 납북자 문제를 제외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납치 문제 해결에 공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 북한은 여러 납북자 중에서도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김영남을 첫 번째 가족상봉 대상자로 선정했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공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납치는 범죄행위

납치는 명백한 범죄이자 인권유린행위다. 따라서 납치자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또 언젠가는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러나 납치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속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다. 김영남씨 가족 상봉을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연대 약화로 연결시키려는 북한의 정치작업을 막아야 한다.

13살 때 납치된 딸의 송환을 위해 30년 넘게 눈물겹게 투쟁하고 있는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와 김영남 씨의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딸과 자식의 송환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지금이라도 납북자 문제의 완전한 해결의 의지를 가다듬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의 전화통지문에 불순한 의도가 뻔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측의 조치가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인 자세에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의도를 은폐하고, 이번 제안에 담긴 상봉의 한계와 약점을 슬그머니 감추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다루거나 압박만 가하면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며 결국 그 피해는 납북자 본인과 가족에게 돌아간다”며 납북자 문제가 원칙적이고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공박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모습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납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의지와 대책은 내오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생이별을 한 가족들의 수십년간 쌓여온 고통과 아픔을 적당히 이용해 남북 간에 ‘눈물’ 이벤트를 만들고, 그것으로 표밭을 갈아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납북자 가족과 일본 당국을 만나라. 정부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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