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문제, ‘남북 어영부영 공조’ 절대 안된다

여자가 욕실 전구를 일부러 꺼버린다. 그리고 “여보, 욕실에 등 나갔어”라며 거실에서 신문 보는 남편을 부른다. 남자는 “아까 싸울 땐 말도 걸지 말라더니”라고 구시렁거리며 욕실로 들어간다. 이윽고 남자의 비명소리, “왜 그래?”하는 여자의 다급한 확인, “전구가 뜨거워”하는 남자의 목소리.

요즘 방영되는 TV CF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에 “검색창에 ‘화해하는 법’을 쳐보셨군요?”라는 자막이 흐른다. 한 검색 포털사이트 광고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아침에 대판 싸우고 집을 나섰어도 저녁에는 아무일 없는 듯 웃으며 들어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 부부관계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끝까지 따지고, 서로간의 득실을 정확히 따져 계산한다면 원만한 부부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냥 져주는 것이 상책이고, 웃음으로 넘기는 것이 금슬지락(琴瑟之樂)이다.

지난 몇 년간 ‘남북화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남북관계도 이렇게 풀리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충 넘기자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통일의 과정에 관용과 화해의 원칙이 대단히 중요하게 대두될 시점이 분명히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관용과 화해’의 남북관계, 김정일 정권 제거 후 가능

오늘날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남북의 지나친 격차이다. 경제적인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 사회 ∙ 문화 ∙ 인권 측면에서의 격차는 노예제 사회와 민주주의 사회의 차이에 버금간다. 그런 격차의 원인을 따지면서 ‘지나치게 앞서간 남한’을 탓할 수는 없다. 당연히 문제는 ‘지나치게 낙후한 북한’에 있으며, 낙후의 원인을 제거해야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원인은 분명하다. 김정일 정권이다.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발전은 전혀 기대할 수 없으며, 외부세계의 정보가 북한 내부에 전해지고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오늘도 김정일 정권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제거되기만 하면 유능한 우리 북한동포들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낼 것이며, 민족의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때 가서야 연방이나 연합 같은 하는 문제가 논의될 수 있고, 그때 가서야 분명히 관용과 화해의 원칙이 요구된다.

그때 가서, 구(舊)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반인륜적 범죄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법적인 절차를 거쳐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겠지만, 백치의 상태에서 하릴없이 순종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완전히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좋은 부모 만나 운 좋게 남한에서 태어난 우리가, 그들을 처벌하고 손가락질할 어떠한 자격도, 명분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먼 미래 – 혹은 가까운 미래 – 에 필요한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지금 당장 김정일 정권에게 발휘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열매 먼저 따고 나무를 심자는 말이다. 사실 이것은 김정일 정권이 그토록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일 ‘어영부영 전술’에 말려들지 말아야

최근 납북피해자 김영남씨의 금강산 기자회견을 살펴보면 이러한 말이 등장한다.

“나와 내 가정의 문제를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아 달라.”
“과거에는 북남 간에 별별 사건이 다 있었지만 6.15를 계기로 다 털어버렸다.”
“이제 와서 콩이냐 팥이냐 과거사 따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사람을 납치하고, 납치된 사람이 죽고, 유골의 진위여부가 불명확한 문제가 어찌 ‘나와 내 가정의 문제’란 말인가. 김영남씨의 기자회견문은 어차피 김정일의 최종 비준을 받았을 터, 회견문을 꼼꼼히 살펴보면 김정일의 바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김정일은 6.15 공동선언이 자신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술 더 떠 김정일은 ‘과거사를 따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며 ‘좋은 말로 할 때 넘어가라’는 식의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남한의 대통령 개인 – 게다가 지금은 퇴임한 – 에게 남북 인민 공통의 불구대천의 원수를 용서할 권한을 우리는 준 적이 없다. 김정일은 죽을 때까지 그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며, 그에게 6.15를 면죄부쯤으로 여기게 만든 사람들 역시 그 죄값을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최근 조성된 정세는 오롯이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김정일의 어영부영 전술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남북의 문제는, ‘나중에 좋을 때를 봐서 그때 가서나 이야기하자’는 식으로는 풀릴 수 없다. 그러기에는 역사의 실타래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 풀고 한 걸음 나가고, 다시 풀고 또 한 걸음 나가는 식으로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지난하더라도, 그것이 정도(正道)이다.

납북자 문제 역시 그렇다. 사실은 김영남씨 생존도 일본의 끈질긴 추적 끝에야 알아낸 한국 정부가,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닌가’라며 아리랑치기 패거리들이 슬쩍 지갑 꺼내듯 어물쩍 넘기려는 태도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남북의 ‘어영부영 공조’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는 말이다.

“송환 없이 해결 없다.” 이것이 우리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