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넘지못한 적십자회담

남북이 25일 막을 내린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전쟁시기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납북자) 문제 때문에 최종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것은 이 사안의 미묘한 특성을 반증한다.

남측은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합의문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측은 “그런 문제는 거론도 하지 말라”며 완강히 맞서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의 민감성 = 정부는 회담에 앞서 줄곧 이번 적십자회담의 목적은 지난 6월 제15차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 및 주소확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 북측에 생존한 국군포로는 500여 명, 전후 미귀환 납북자는 48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2년 9월 제4차 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거론한 뒤 2003년 1월 제3차 적십자 실무접촉에서도 ’전쟁시기 행불자의 행사.주소 확인 등은 면회소 건설 착공식 후에 협의.해결한다’고 합의하며 북측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특히 정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7 면담, 8.15 남북공동행사,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 등 북측 당국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로 이어지는 남북관계 상승 무드로 인해 전향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와 관련된 인도적 사안을 이번 기회에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약속한 만큼 북측도 분위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회담 기간 내내 팽팽한 신경전 = 회담 기간 화상 상봉이나 이산가족의 서신교환 문제 등에 대해서는 남북이 쉽게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회담의 핵심인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 문제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북측은 물론 ’전쟁시기 행불자’라는 표현으로 국군포로 문제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북측은 기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특수이산가족 상봉 형태로 국군포로 문제를 다루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며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남측은 전쟁시기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납북자)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결국 시기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규모, 방식 등은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

북측이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 의사를 비치면서도 납북자 문제에서 만큼은 완강한 자세를 보인 것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치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측은 이같은 북측의 입장을 고려, 회담 내내 ’납북자’라는 용어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해결점을 찾으려 했으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화상상봉과 서신교환 등 나머지 안건에 대해 의견접근을 이루고도 납북자 문제로 인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아쉽기만 하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납북자 문제는 결국 제16차 장관급 회담 등에서 논의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담장 표정= 남북은 25일 하루에만도 수석대표 접촉과 대표 접촉 등을 4차례나 개최하며 납북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오전만 해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하던 남측 대표단은 분위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회담은 해봐야 알지만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합의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북측 관계자도 오전에 열린 수석대표 접촉이 15분만에 끝난 것에 대해 “회담이 잘 되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분위기는 반전됐다. 북측의 완강한 입장이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았고 남측 역시 반드시 납북자 문제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 확인되면서 회담장에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후 8시15분 대표접촉이 시작된 지 5분 만에 끝나면서 합의문 작성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접촉을 마치고 나오는 남북 대표단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특히 오후 9시50분쯤에는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북측 상황실에서 황철 북측 대표와 수행원 등 대부분 인원이 철수했다가 30분만에 돌아오는 ’무력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결과 막후 접촉을 거친 뒤 오후 11시10분 종결회의를 열어 회담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회담장인 금강산호텔은 남북회담관계자, 기자단, 일반 관광객들이 뒤섞여 미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회담 전망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들어 회담장 바로 아래층인 1층 카페에서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관광객의 노랫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반면 회담장이 마련된 2층에선 양측 회담관계자들이 피곤한 얼굴로 빈 탁자 주변에 둘러앉은 채 줄담배를 피워댔다.

일부 관광객은 회담관계자를 향해 “아직 합의 안됐어요”라고 묻기도 했고 지친 회담관계자들도 2층 난간에 기대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60대 후반의 한 관광객은 “뉴스를 봤는데 아직 합의가 안된 모양”이라며 “금강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도 남북관계란 게 쉽지 않겠지”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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