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어부, “살 쪘다”는 말에 “다 원수님 덕” 답해

이산가족 상봉단이 20일 오후 3시부터 금강산 관광지구 내 금강산 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60여 년 만에 만난 남북 가족들은 처음에는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머뭇거린 듯하다가 ‘누구 맞느냐’ ‘알아보겠느냐’며 서로 부둥켜 안으면서 이내 상봉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남측 상봉자 문정아(86) 씨는 테이블을 찾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동반한 딸이 북측에서 나온 가족 얼굴을 알아보고 “맞아, 여기야”라고 말하자, 북측에서 나온 여동생 두 명이 “나 막내딸이잖아”라며 한참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북한에 사는 여동생 두 명을 만난 김철림(94) 씨는 “그새 70년이 넘었으니까 이렇게 됐네”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에 북측 여동생들은 “장군님(김정은)이 우리 데려왔다”라며 “이게 다 장군님께서 마련해준 거야. 신발이랑 내의. 우리 돈 한 푼 안들이고 오빠 만난다고 해주셨다”고 답했다.

우리 측 최고령 상봉자인 김성윤(96) 할머니는 북측 가족보다 먼저 테이블에 착석해 북측 가족을 기다렸다. 사촌 동생을 만나자 눈물을 보였지만, 금세 밝은 모습으로 상봉했다. 김 할머니는 사촌 동생이 가져온 사진을 보면서 모든 것이 기억이 나는 듯 옛날이야기를 정겹게 이어갔다.

60여 년 만에 만났지만, 지병 때문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봉 가족도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김영환(90) 씨는 6·25전쟁 당시 헤어진 아내 김영옥 씨와 해후했지만 약간의 치매기가 있어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다. 김 씨와 동반한 아들 대성 씨는 “옛날 사진 있으면 알아보시겠냐”고 물었지만, “아니 모르겠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남측 상봉자 이영실(88) 씨도 북에 있는 여동생 리정실(85) 씨와 둘째 딸 동명숙(67) 씨를 만났지만,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 이 씨 동생 리정실 씨는 “언니, 저예요. 왜 듣질 못해”라며 울음을 터트렸고, 딸 명숙 씨는 “엄마, ‘명숙아’ 해봐요. 엄마 딸이에요. 딸”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그래요?”라며 끝내 동생과 딸을 몰라봤다

남한의 딸 동성숙 씨는 어머니 이 씨를 대신해 이모에게 “엄마가 오실 수 있을지 몰랐어요”라며 “상태가 안 좋아서 계속 결정을 못했는데, 엄마가 꼭 나와야 한다고. 이모가 건강하셔서 아주 좋아요”라고 어머니의 마음을 전했다.

1·4 후퇴 때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남으로 내려온 강능환(93) 할아버지는 얼굴도 모른 채 어느새 백발이 된 아들 강정국(64) 씨를 만났다. 강 할아버지는 정국 씨를 만나자마자 “늙었다. 한 번 안아보자”며 둘은 얼싸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남에서 온 아들은 정국 씨에게 “제가 동생입니다 형님.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52살인데 형님 몇 살입니까”라고 묻자 정국 씨는 아직은 머쓱한 듯 “64살”이라고 짧게 답했다. 

북한에 의해 강제 납북된 가족들도 40여 년 만에 만나 눈물의 상봉을 했다. ‘오대양 61호’에 승선했다 1972년 납북된 박양수(58) 씨와 ‘수원 33호’에 승선했다가 1974년 납부된 최영철(61)를 만나는 동생 박양곤(52) 씨와 형 최선득(71) 씨.

동생 양곤 씨와 얼굴 생김새며 체형이 완전 판박이인 납북어부 출신 양수 씨는 테이블에 앉아 초조한 모습으로 42년 만에 만나는 동생과 생면부지의 조카 종원 군을 기다렸다. 이윽고 동생 양곤 씨가 들어서자 이들 형제는 잠시 눈물을 보이더니 이내 서로 안은 채 오열했다.

그러다 동생 양곤 씨가 형 양수 씨를 바라보고 흐느끼다 “행님아”하고 42년 동안 부르지 못했던 형님을 부르며 형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다시 오열하기도 했다. 이내 안정을 찾은 형제는 부모님의 안부와 남측에 있는 다른 형제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또 다른 납북어부 출신인 영철 씨를 만난 형 선득 씨는 서로를 알아보고 한동안 부둥켜 안은 재 울음만 터트렸다. 동생 영철 씨가 먼저 “얼마 만이야, 건강한 거 보니 반갑다”고 말을 건네자 형 선득 씨가 “40년 전 얼굴 그대로야. 회신 온 거 보고 결혼해서 잘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선득 씨가 “헤어질 때보다 살이 더 찐 것 같다. 남쪽 가족들은 가정도 화목하고 좋다”고 하자 동생 영철 씨는 주위에 있는 북측에서 나온 안내원과 보장성원을 의식한 듯 “다 원수님(김정은) 덕이다”고 말해 40여 년 다른 체제에서 떨어져 지낸 세월을 실감케 했다.

관심이 집중된 납북자 가족 상봉단에 남측 기자단이 오래 머무르자 북측 안내원과 보장성원이 다가와 “한 테이블에서 2분 이상 하지 마라. 다른 데도 보고 그래야지 여기 만나는 거 방해하는 거다”라고 말해 우리 측 기자단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전시(戰時)납북자 가족인 최병관(67) 씨는 북에 있는 이복 남동생 최병덕(46) 씨와 여동생 최경희(55) 씨를 만났다. 이들은 아버지 얘기를 나누다 서로 얼싸안고 “오빠” “형님” “동생”을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동생 병덕 씨는 북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형 병관 씨에게 보였다. 6·25 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북에서 새로운 부인을 만나 결혼, 슬하에 7남매를 두었는데 사진에 이들 모두가 담겨 있었다. 이에 병관 씨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까 외로움이 덜 했을 것이다”면서 “이런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면 얼마나 괴로웠겠냐”며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전시납북자 가족인 최남순(64) 씨는 단체상봉에서 북측 이복 동생 3명과 마주 앉았다. 이복 동생 최경찬(52), 경철(45), 덕순(55) 씨와 만나 아버지 사진 한 장을 건네받았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 인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최 씨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이후 최 씨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동생들과 나눈 후 “아무리 봐도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남측 상봉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은 이날 오전 8시 20분께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를 떠나 오후 1시 5분 정도에 온정각 휴게소에 당도했다. 상봉자 82명 중 2명이 구급차로 이동했고, 19명이 휠체어를 타고 금강산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봉자들은 2시간의 단체 상봉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2시간여 동안 북측 주최 환영만찬을 끝으로 상봉 1일차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금강산은 이날 낮부터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지만 60년만에 만난 남북 이산가족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숙소인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은 북한이 자산을 몰수·동결 이후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인지 건물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간판 색도 바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