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내 친북단체 완전점검

▲ 북한인권법안에 반대하는 전국연합 집회

우리 사회 친북운동의 진원지는 친북 주사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민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등의 단체를 들 수 있다.

전국연합의 강령은 ‘반미’가 최우선

재야의 대표단체였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주도하던 인사들(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이재오 등)의 정치권 이동 등으로 지도부 공백이 생기면서 1991년 전국연합이 탄생하였다. 전국연합은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던 전민련과 달리 NL(민족해방)계열이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했을 뿐 아니라 거의 일색화되었다. 그 결과 강령에서도 이른바 자주, 민주, 통일을 명확히 하였고, 특히 통일운동에 적극성을 보였다. 또한 전국연합은 명망가들의 주도로부터 탈피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단체가입 중심으로 편성하여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청년단체협의회, 한총련 등이 주도단체가 된다.

전국연합의 강령을 보면 그 지향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우선 ‘반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친미예속성을 타파하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군 작전권을 회수하며 미국 등 외국과 맺은 불평등한 군사협정을 폐기한다” 등이 핵심강령이다. 통일강령에서는 “전 민족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남북정치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남북의 제도적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정부, 두 개의 제도’에 입각하여 통일한다.” 등 북한이 주장하는 정치협상회의와 연방제통일에 기본적으로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재벌 해체’와 ‘가족농에 기초한 협업농 체계 구축’ 등을 제시하여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부정을 시사하고 있다.

전국연합은 90년대 중반 ‘범민련’문제로 극심한 내분을 겪게 되는데 이 대목은 범민련을 다루면서 알아보자. 여하튼 범민련에 대한 찬반을 중심으로 전국연합이 갈등을 겪으면서 이창복 상임의장을 비롯한 지도부들이 정치권으로 이동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 결과 전국연합은 상당한 위축을 겪게 된다. 특히 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북한의 조기붕괴설이 득세하면서 친북운동권 전반이 약화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고 대북포용정책을 펴면서 전국연합 등 친북세력은 다시 부활하게 되고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친북운동은 활기를 띠게 되고 이 추세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성조기를 불태우는 전국연합 집회 모습.

전국연합은 현재 여러 친북단체들 중에서도 일종의 핵심집단으로 기능을 하고 있으며, 비록 여러 단체들의 연합체이지만 중앙이 나름의 주도성을 갖고 움직이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즉 중앙 집행부에서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90년대 중반이후 비교적 합리적인 지도부인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친북경향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근래 전국연합은 자체의 독자적 활동보다는 사안에 따라 타 단체들과 연대틀을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주로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연합의 반미친북활동의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02년 여중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자 이를 고의적 살인으로 규정한 것과 지난 2년간의 이라크파병반대운동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이 주최하는 북한인권국제회의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렸다. 전국연합은 자신의 강령에 “한반도를 비핵지대화 하고 모든 형태의 핵무기 사용이나 이를 위한 훈련을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판하면서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당국과 유착된 범민련의 주요활동은 ‘친북운동’

▲ ‘주한미군철수’는 친북단체의 단골 메뉴

범민련은 이른바 남, 북, 해외 3자연대의 통일운동을 내걸고 지난 91년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범민련 남측본부이고 북측본부, 해외본부가 존재한다. 전민련의 조국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범민련은 준비위가 출범하자마자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대대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공개활동이 어렵게 된다. 활동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면서 범민련의 초기 주도자들인 문익환, 이창복, 조성우 등은 범민련의 해체와 새로운 통일운동단체 결성을 추진하게 되는데, 북한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반대로 결국 실패하게 된다.

한편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이 범민련 해체를 주도하면서 전국연합은 내분을 겪게 된다. 한총련 등 북한의 방침에 충실한 집단들이 범민련 사수를 주장하는 바람에 이 문제에 관해 전국연합은 명확한 방침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되고 결국 친북파들의 범민련 사수론이 득세하면서, 범민련해체론을 내세운 주요간부들은 전국연합을 떠나는 결과를 맺는다.

이처럼 범민련은 철저히 북한의 지원에 의해 존속하게 되고, 북한과의 유착의 당연한 결과에 따라 친북을 그 활동의 핵심으로 삼는다. 예컨대 북한은 남북공동행사 등에 범민련의 참여를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식으로 범민련의 입지를 보장해주고 있으며,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범민련이 이적단체로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음에도 불국하고 정부당국이 남북민간교류에 참여를 허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범민련은 남, 북, 해외에 각 본부가 있고 해외에 사무국이 존재하고 있는데, 북측본부는 이른바 순수한 민간단체가 아니고 결국 권력이 주도하는 만큼 북측본부의 발언권이 주도성을 갖게된다. 남, 북, 해외 3자의 합의에 따라 활동방향이 정해지는 이런 구조적 특성상 설사 범민련남측본부가 다른 견해를 갖더라도 북한정권의 이익에 반하는 활동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되어 있다. 범민련의 자체 조직은 취약한 상태이며, 주로 가장 충성스러운 한총련을 통해 활동이 진행된다.

범민련의 친북성향은 “범민련 남측본부는 통일의 모색과 북한과의 접촉에 있어 일관된 조율과 신중한 정책추진이 필요한 현재의 실정 하에서 강령의 일부로서 북한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외국군 철수, 핵무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악법의 철폐 등을 채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잘 나타나 있다.(대법원 97.5.16 선고 96도2696 판결)

한총련,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 평화 보장”

▲ 한총련의 통일대축전 행사 모습.

한총련은 87년에 만들어진 전대협이 강화된 형태로 1993년 4월, 9개 지역 200여 개 대학 총학생회가 어울려 출현하였다. 즉 연합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각 대학 총학생회장의 연대기구였던 전대협과 달리 대의원체계를 갖추는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한총련은 논리적으로는 어떤 정파도 장악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친북주사파들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그 원인을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사회주의권 붕괴사태로 인해 소련을 혁명모델로 삼았던 이른바 PD(민중민주주의)계열의 세가 급격히 약화되면서 이른바 NL(민족해방)계열의 의 독주체제가 되었다.

둘째로 한총련은 의장을 비롯한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표면적으로는 실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집행부에서 직업적으로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들은 적어도 10년 이상 학생운동을 하고 있으며, 철저히 내부 검증을 통한 주사파들이다. 결국 주사파들이 조직적으로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어서 그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한총련 정책위원회나 조국통일위원회 성원들이 구속되어 그들이 김일성, 김정일에게 항상 예를 갖추는 의식을 한다는 사실 등이 밝혀진 적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집행부의 핵심요원들인 것이다.

한총련은 그 강령의 1번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정치·군사·경제·문화적 지배와 간섭을 막아내고 조국의 완전한 자주화를 실현한다.”고 밝혀 반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미보다는 친북을 넘어서서 맹(盲)북 내지 종(從)북에 구조적으로 깊이 빠져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대학 총학생회의 연합체라는 대중조직이 특정정파에 장악되는 바람에 학생일반의 여론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게 되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은 한총련이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재로 쓰고 있는 내용 중의 일부이다.

문) 북한의 일당독재에 대해서 왜 비판이 없는가?

답) “조선노동당은 해방이후 친일파 숙청 및 토지개혁 실시 과정에서 민중의 지지 속에 완전히 뿌리 내렸으며, 앞으로도 결정적 과오를 범하지 않는 한 그에 대한 지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선노동당 이외에 천도교청우당을 비롯한 당들이 있으나 조선노동당의 힘이 막강하여 존재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문) 북한의 권력세습은 세계가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답) “인도의 인디라 간디 총리는 아버지 네루 통리의 뒤를 잇고, 그 후 아들 라지브 간디가 다시 선출되었으나 인도 스스로가 간디 일가의 집권을 요구했고, 이를 비난한 여론은 없었다. 김정일 비서가 이북의 차세대 지도자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이북 민중의 고유한 권리이다. 외부에서 뭐라뭐라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 성균관대학교 조국통일위원회(조통위), 통일학교 교재, “북한사회 18문18답”, 1994

그런가 하면 이들은 ‘북한방송 전문 청취팀(Broadcasting Team, BC팀)’을 운영하며, ‘구국의 소리’, ‘구국의 횃불’, ‘구국의 광장’, ‘바른 삶’, ‘애국’, ‘세 새대’. ‘ 새 날’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북한방송의 녹취 간행물을 제작하여 이를 전국 지부에 내려 보내 학습하게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에서 운영하는 ‘구국의 소리방송’이 중단되었지만 인터넷을 통한 내용공급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한총련의 연간 사업계획(흔히 ‘총노선’이라 부름)과 같은 공식문서들을 보면 북한의 대남방송과 글자 한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구를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05년 한총련 <새내기 의식화 사업계획서>에서는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 평화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수년전에 대학가에서는 학생운동 자체가 학생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어서 심지어 한총련계열 후보조차 선거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놓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버렸다. 올해 한총련 의장이 된 모대학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에게 PDA지급을 공약으로 하여 당선될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운동 자체가 퇴조되면서 한총련을 견제할 만한 조직적 운동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하튼 한총련의 독점구조는 학생들 내부의 조직적 투쟁을 통해 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노동계와 시민운동단체까지 친북운동에 합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친북운동의 새로운 특징은 그동안 북한과 거리를 두던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이 대세를 의식하면서 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민노총과 민노당이 친북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는 내적으로도 주사파 최대의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이 수사기관에 의해 그 존재가 밝혀지자, 일부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민노당에 가입하면서 나타난 변화이기도 하다. 최근 민노당 중앙위원회는 북한핵무기 보유선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히려는 결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만큼 민노당 내부에 주사파계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친북운동에 합류하면서 이들을 포괄하기 위한 단체들이 조직되는데 6.15남북공동선언실현과한반도평화를위한통일연대(이하 ‘통일연대’)가 대표적이다. 2001년 3월에 발족한 통일연대는 전국연합에 민주노총, 민노당, 민변 등이 추가된 모양새를 갖고 있으며(참여연대는 참관), 그 후 반미친북활동의 대부분이 통일연대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2003년 5월 전국연합, 민노당, 민노총 등이 전국민중연대를 만들어 반미친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전국연합, 한총련 등에 의해 국한되었던 반미친북운동에 노동계와 시민운동등이 가세하면서 그 세가 커지게 되었으며, 사회적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결국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이 친북활동을 사회적으로 합법화, 대세화 시키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전국연합 등 친북주사파들과 대세주의적 세력들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포퓰리즘적 분위기에 휩싸여 반미와 친북으로 넘어간 시민단체들의 자기성찰이 시급하다.

홍진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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