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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모(37세)씨 가족 등 북한주민 5명이 2톤급 소형 선박을 타고 동해상으로 귀순했다.
이씨는 “군 복무할 때 남한방송을 듣고 남한 사회를 동경해오던 중 지난 1월 귀순을 결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 서해 백령도를 통해 귀순한 홍씨(43세)가 ‘배가 고파 탈출했다’고 진술한 데 비해 이번 이씨의 탈출은 단지 생계문제 때문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어부들은 북한에서 생활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북한에서 ‘3부(간부, 과부, 어부)가 잘 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북한에서는 배를 개인이 소유하지 못한다.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않아 배를 살 능력이 있더라도 반드시 기관에 등록해놓고 관리는 개인이 한다. 이는 개인이 자동차를 구입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을 예고한 적이 있다. 대량탈북도 바다를 통한 ‘보트피플’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탈북했다. 사실 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최소한 굶어 죽지 않기 때문에 탈출할 생각까지 하지 않는다. 이것이 ‘해상탈출’이 드문 이유 중 하나다.
또 당초 탈북이 체제반대가 아니라 생계형이었다는 점도 ‘해상탈출’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다. 남한에 대해 적대교육만 받아오던 주민들이 쉽게 자기 생각을 바꿀 순 없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과 제3국에서 3~5년 동안 떠돌다 남한사정을 이해한 후 입국을 결행했다.
배를 타고 직접 남한으로 나오기까지는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소형 전마선을 이용하고, 안개낀 날을 선택하기 때문에 풍랑에 표류될 위험이 있다. 또한편 북한해군의 집중사격도 감안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트피플’에 성공한 북한주민들은 흔치 않다. 2002년 8월, 21명의 가족친척을 이끌고 귀순한 순용범씨의 경우가 가장 컸고, 1987년 김만철씨 일가 10명, 97년 안선국, 김원형씨 일가 14명이 서해안으로 귀순한 사건이 그 다음이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