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땅에 묻은 다음날 금 캐야 하는 여인






▲지난해 12월 사망한 북한 꽃제비 여성.<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의 대(大)아사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꾸로 가는 김정일 정권의 경제정책에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는 오늘도 살아남기 위한 주민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견뎌낸 북한 주민들은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굶어 죽어가는 가족과 친지, 동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현실에서, ‘수령의 나라’ ‘지상천국’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들은 더 이상 김정일 정권에 기대지 않는다.


당시 북한의 식량난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편적으로 금을 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되짚어보자.


양강도 혜산시 녹봉산 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총 24가옥 가량이 살고 있는 곳으로, 2004년 삼수발전소가 생기면서부터 학교를 비롯해 공공시설, 사회안전망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이 마을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 마을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식에 전국각지에서 금을 캐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거주 가옥은 물론 산골짜기 반토굴집에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사람, 장애인, 망한 장사꾼, 가정주부, 직장인, 대학생, 농장원, 9살 이상의 어린이들,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 군과 법기관 사람 등 남녀노소, 계층은 다르지만 금을 캐는 목적아래 이 마을로 모여든 것이다.


다만 군과 법기관(주로 토지를 관할하는) 사람들은 굴에 입갱하지 않고, 주어진 실권을 이용해 ‘실적’을 챙기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와 달리 군이나 법기관 사람들의 보증이 없고 기계수단도 변변치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금을 캔다. 이들의 소원은 “제발 오늘만은 쫓기지 말고 금을 캤으면” 하는 것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금굴을 뚫고 광석을 채취하고 물가로 가져가 수채작업을 마친 후 금을 수확해 팔고, 먹을 것을 사는 것이다.


이침 식사 후 작업복을 입고 정대, 망치, 꺽쇠, 대야, 질 좋은 마대(주로 파란색으로 ‘대한민국’이라 쓰인 마대를 사용한다)와 양동이, 전지, 초, 삽, 밧줄, 수채와(금을 잡을 수 있게 나무로 칸막이를 만들어 사용) 수채보자기(구멍이 나지 않은 천) 등 작업도구를 가지고 금굴에 들어간다.


일단 광석채취를 한 다음 양동이로 끌어올려 광석을 강가로 가져간 다음 수채에 담고 물을 부어 돌과 흙은 내려 보내 보자기에 묻어있는 중석과 금을 갈라내면 작업이 완성된다.


이런 작업공정도 쫓는 사람이 없을 때 가능할 뿐 군대나 법기관 사람들이 작업현장에 나타나면 그들은 본의 아니게 ‘땅 도적’이 되어 쫓겨야 한다. 허가 받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시일꾼들이 현장에 덮치면 이리저리 쫓기느라 난리가 난다.


잡히면 작업도구는 물론이고 애써 채취한 금도 다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고 하소연은 더욱 못한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남자들은 매를 당하고 여자들은 물벼락이나 상욕을 듣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는 그들에게 교제비로 담배나 술을 권해 단속을 피하기도 한다.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들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컴컴한 새벽에 남들이 굴에서 광석을 찾으면서 캐낸 흙을 대량 수집해 수채를 쳐야 하는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 안타까운 사고도 다반사다.


2008년 6월16일, 혜산시 중리의 한 남성(39세)이 새벽부터 남들이 버린 흙 200마대를 날라다 강가에 놓고 점심식사를 하려던 중, 물을 건너가려던 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강에 들어섰다가 목숨을 잃는 참사를 당했다.


그 곳은 저수지물이 차기 전에 금굴을 뚫었던 자리여서 깊이가 보통은 10m이상이었다. 힘든 노동 후 지쳐있던 상황에 금을 캤던 구덩이에 빠져버린 것이다. 근처에서 수채치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찾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워낙 물 깊이가 깊은 것도 있었지만 굴에 빠졌기 때문에 물이 빙빙 돌면서 좀처럼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보안기관이 군대와 합동하여 2일 만에 시체를 찾았고 다음날로 장례를 치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따른 현실에 다시금 가슴 아파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이 9살 난 아들과 남편을 앗아간 그 강가에 다시 나와 금을 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땅에 묻은 다음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오고 싶지 않은 곳에 나와야 했던 여인을 보고 사람들은 동정의 눈길을 보냈고 여인은 그 눈길들을 애써 피했다.


북녘의 가슴 아픈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지금도 녹봉산엔 배고픔에 쫓긴 주민들의 발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군과 법기관의 단속을 피해 목숨을 내놓고 강바닥을 긁고 있을 주민들의 생존투쟁은 오늘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오늘 내가 살기 위해 치열한 생존현장에 나서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안타까움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주민들의 생존투쟁은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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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 기자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