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간첩의 첫 탈북자 살해 ‘이한영 피살’ 사건

20일 황장엽 암살조 북한 간첩 2명이 검거됐다. 이 같은 북한의 ‘간첩테러’는 1997년에도 있었다. 고 이한영(본명 리일남)씨는 1997년 2월 괴한에게 피살됐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 우리 관계 당국은 이 사건을 남파 간첩에 의한 한국 최초 탈북자 살해로 보고 있다.   


1960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 씨는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2002년 사망)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이다. 그는 모스크바 유학생 1기로 선발돼 19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학 어문학부에 입학한다. 프랑스어 연수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간 그는 1982년 스위스 한국공관을 통해 10월 1일 서울로 망명했다. 북한 최대 권력자의 처조카로서 북한 내 최고 특권을 누렸던 그는 로열패밀리로서의 모든 것을 버린 후 였다. 


1987년 12월 이 씨는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입사한 후 88서울올림픽 통역과 취재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듬해 12월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1990년 KBS를 퇴사한 후 사업가로 활동했다.


이 씨는 1996년 김정일과 그 가족 및 측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해 북한 정권의 실상을 공개한다. 『김정일 로열패밀리』(시대정신·원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 그는 이 저서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김정일은 이 씨가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이 씨는 1997년 2월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자신이 살던 아파트 1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공작조로 보이는 괴한2명에게 총격 당했다. 그는 사건 직 후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0일후 결국 숨졌다.


그는 피격당한 당시 의식을 잃기 전까지 ‘간첩’ 이라고 말했고, 피격 현장에서는 북한 간첩들이 많이 사용하는 권총탄피가 발견됐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 최고위층의 실상을 증언한 것에 대한 북한공작조의 ‘보복 테러’로 추측돼 왔으나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8개월 뒤 1997년 10월 ‘부부간첩단 사건’의 범인들이 검거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부부간첩단 사건은 남파된 부부공작조 최정남(35)과 강연정(28·당시 나이)이 ‘전국연합’ 산하조직 간부에게 “북한에서 왔다. 공화국에 같이 가자”며 접근했다가 붙잡힌 사건이었다.


당시 이 부부간첩단은 “이한영 씨 살해범이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전문 테러요원인 최순호와 신원 미상의 20대 남자 등 2명으로 구성된 특수공작조였다”고 진술했다.


이로써 이 씨를 살해한 특수공작조는 살해 1개월여 전에 남파됐으며, 범행 후 북한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부부간첩단은 특히 “이 씨를 살해하고 돌아온 이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고, 재남침을 위해 성형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황장엽 씨가 입국(1997년)하면서 북한 지도층의 문제점과 비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했었고 북한 지도층이 이씨를 처단해야 할 배신자로 찍어 암살을 시도한다는 첩보가 정보기관을 통해 돌았었다. 이 때 황장엽 씨는 ‘이한영 씨 피살사건’을 듣고 “당시 망명 직전에 있던 나에 대한 경고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씨의 유족은 2002년 “국가가 보호의무를 소홀히 해 이씨가 살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대법원은 국가에 96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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