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에는 북한학과도 있습니까?”

▲ 금강산호텔 앞에 있는 ‘주제소’. 7월 8일 북한주민들이 헌화한 것을 찍은 사진

지난 7월 3일부터 15일까지 명지대학교 사회봉사단이 주최하는 <대학생 금강산지역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이 개최됐다. 북한학과에 재학 중인 터라 학과 선배의 추천을 받고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지원했다.

예정에 없던 북한행을 결정한 지 몇 일만에 금강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는 맘만 먹으면 순식간에 ‘분단 50년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나‘라는 놀라움을 갖고 목적지인 금강산에 도착했다.

봉사활동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운이 좋게도 ‘금강산 호텔’에 배치 받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행운인줄 몰랐지만 지내고 보니 매우 엄청난 행운이었다. 바로 북한 동무(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그들을 동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해졌다.

금강산이 북한 땅이기는 하지만, 관광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북한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금강산특구와 북한 땅은 2m가량의 철조망으로 엄격히 구분돼 있다. 철조망을 지키는 군인들에게는 말을 거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북한사람들은 금강산을 등반할 때 만나는 안내원이 전부다.

이 호텔에서 10일간 사무보조, 호텔운영 보조, 관광객 안내 등의 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을 1년 동안 관리해온 남측 호텔 관계자들과 깊은 대화를 가질 수도 있었다.

북한 동무들, “미국과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호텔에서 일하는 300명의 북한 사람들은 모두 금강산특구 근처에 위치한 고성읍과 온정리에 사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음료와 주류를 파는 1층 ‘로비라운지’에서 근무하는 동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무들은 19~24살의 젊은 나이로 모두 예쁘고 똑똑했다. 남한 관광객들이 많은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였다. 이 동무들은 남한 대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북한을 연구하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에도 매우 놀라워했다.

▲ 옥류관. 7월 말에 오픈 예정이다. 평양에 있는 옥류관을 그대로 축소해서 지었다고 한다.

우리는 통일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며칠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대로 1층에서 근무하는 14명의 동무들은 모두 틀에 박힌 논리로 같은 주장을 폈다. 그들은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하며,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인 미국과는 비타협적으로 싸워야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미국을 ‘승냥이 떼’로 보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3일째, 말로만 듣던 정전을 경험했다. 금강산호텔은 북한에서 제공하는 전기로 대부분을 충당한다. 처음 너무 깜짝 놀라 이 중요한 순간을 포착해야겠다 싶어 얼른 사진을 찍었다. 사무실에 앉아계시던 호텔 경영진(남한)분들은 ‘에이-또 정전이야’라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여 빨리 조치해 달라 요구했다.

이날부터 내가 머물렀던 12일까지 정전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반복 되었다. 보통 20~40분 정도 후에 정상화 되었으며, 정전에 놀란 관광객들에게 봉사원 동무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늘상 ‘지금이 전기시설을 점검하는 시간이라 그렇습니다. 곧 들어오니 놀라지 마시라요’라고 말했다.

4일째 되는 7월 8일은 김일성이 사망한지 11년 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7일 밤 11시부터 8일 밤까지 호텔에서는 음악을 틀수 없었다. 매일 저녁 진행하던 가무공연도 그 날은 진행하지 않았다. 또한 주류를 판매하는 1층과 12층에서는 관광객들이 무리한 음주를 하지 못하도록 부탁을 하기도 했다.

김일성 사망 11주기, 서로 짠듯이 ‘슬픈 표정’짓기로 일관

북한에는 ‘리(里)’ 단위로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그림을 ‘모셔놓는’ ‘주제소’라는 곳이 있다. 금강산 호텔 앞에는 ‘온정리’가 담당하는 주제소가 있다. 7월 8일 오전 내내 작은 꽃다발을 들고 ‘소조’ 단위로 10~15명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헌화를 했다. 줄지어 한 사람씩 헌화를 하고 지도원 동무로 보이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야기 한 후, 세 번 묵상을 하는 형식으로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이 날은 호텔 전체가 적막하고 암울했다. 매일 밝은 얼굴로 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던 동무들이, 이 날만은 모두 ‘말꼬리잇기’를 하자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마치 ‘누가 더 슬픈 표정을 짓나’를 내기하는 것 같았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다음날 동무들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뜸한 낮 시간에는 사무실에서 호텔을 직접 경영하시는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들은 1년간 북한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며 호텔을 운영해온 분들이다. 그들은 ‘북한 애들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다시 원점이다. 북한과 하는 사업에는 분명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분들은 남북경협 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려면, 북한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겉모습과 말은 같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관계자분들의 도움으로 인근 마을 내부를 촬영한 사진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 마을에는 대규모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영농장’이 있다. 기술과 비료가 부족하여 남한의 전문가가 가끔 방문하여 정보와 물자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영농장이 위치한 고성읍은 남한 사람들을 자주 접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구호가 더욱 많은 것 같았다.

금강산, 수령 숭배 선전구호로 오염돼

봉사활동이 끝나가는 무렵, 현대아산 측은 봉사대원들에게 관광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우리는 금강산의 명물인 ‘구룡폭포’와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담겨있는 ‘상팔담’에 올랐다.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안개 낀 금강산은 정말 멋있었다. 등산로에 진입하면서부터 예상대로 각종 선전구호들과 글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형직(김정일 위원장의 조부)을 우상화 하는 글귀부터, 김정일 송시, 김정일 장군의 노래, 각종 ‘말씀판’과 현지교시비까지, 3시간 30분간의 산행 동안 내 카메라를 쉬지 않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금강산까지도 수령을 우상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금강산특구에서의 12박 13일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금강산을 방문하면,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고 돌아간다. 또한 자유분방한 남한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사람들도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살이 오른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금강산특구로 인해 득을 보는 북한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들이는 엄청난 달러가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데 커다랗게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했다.

김은미 /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 사업자 숙소에서 해금강 호텔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고성읍

▲ 금강산호텔 2층에 위치한 직원사무실에서 바라본 북한사람들의 식당, 호텔에서 근무하는 북한사람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남한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

▲ 금강산 호텔 2층 모습

▲ 금강산호텔 12층에서 바라본 사상연구소. 호텔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매주 화요일 5시가 되면 빨간 노트를 들고 그곳에 모인다고 한다.

▲ 금강산호텔 12층에서 바라본 온정리에 소재한 혁명사적연구실

▲ 금강산호텔 2층의 모습. 정전이 되었을 때다.

▲ 고성읍 영농장 내부에 있는 수령우상화 구호문구 이런 모양의 구호가 10~15개 정도 줄지어 있다.

▲ 고성읍 영농장 내부에 있는 구호

▲ 고성읍 영농장 내부에 있는 구호

▲ 영농장 사무실 내부에 있는 김정일 말씀판

▲ 금강산에 있는 김정일 현지교시판

▲ 금강산에 있는 김일성 송시

▲ 금강산에 새겨진 자연바위글발. 주체사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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