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형제는 모두 `유학파’

9일 반세기 만에 상봉한 남측 동생 이병남(72)씨와 북측의 형 병창(77)씨는 그간 안부를 주고 받다 서로 ‘해외유학파’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어릴 적 머리가 좋고 공부벌레로 소문이 났던 형 병창씨는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는 평안북도 덕천에 있는 승리자동차공장에서 기술 부문 책임자로 근무했다.

그는 북한의 과학기술자 대회에도 여러 번 참석했을 정도로 유능한 기술자로 인정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병남씨 역시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현재 국내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6.25 때도 형님은 이불 속에서 노트를 펴놓고 공부를 했을 정도로 공부벌레였다. 또 우리 형제 중에서 머리도 제일 좋았고 노력파였다”며 형님을 치켜 세웠다.

북측 조카 향옥(42.여)씨도 “작은 아버지, 교수여요”라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향옥씨 역시 현재 대학에서 음악 교원(교수)으로 재직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향옥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남쪽에 있는 병원(74) 삼촌이 음악에 재능이 높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인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향옥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사범대학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했다고 밝혔다.

이 얘기를 들은 병남씨도 “음악 참 어려운 것인데… 나도 자식 3명이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맞장구쳤다. 병남씨의 장녀는 지금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고 그 밑의 두 동생도 음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세기 넘게 연락조차 끊겼던 남과 북의 형제는 자신들의 2세들까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음악을 전공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실감할 수 있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