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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노동절이었다.
노동절은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8시간 근로’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벌인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1889년 국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전 세계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 제안하여 이후 해마다 5월 1일에는 파업을 동반한 투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요구가 대부분 해결된 지금의 5월 1일 노동절은 노동자들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와 같은 파업투쟁 대신 마라톤대회와 공연으로 노동절을 기념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5.1 노동절은 당시의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또 여전히 전 세계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5월 1일 경남 창원에서 ‘남북노동자 통일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에서 노동절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노동당 간부들과 직업 축구선수, 보위부원들과 일부 기자들로 구성된 60명의 조선직업총동맹(직총) 일행이 과연 북한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직총은 노동당의 하부조직이자 노동당 간부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일반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이번 방문기간 동안 내뱉은 발언들과 행동을 보아도 노동단체의 대표라기보다는 대남선전사업을 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남측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직총이 노동자대회에서 발표한 공동선언문을 보면 이것이 과연 노동단체들이 진행하는 노동절 행사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남북노동자들이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실천해 나갈 것을 결의하고 민족중시, 우리민족끼리의 입장에서 남북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통일운동을 펼쳐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이들은 6.15 공동선언과 우리민족끼리라는 정치적 구호만을 강조하여 정작 북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또 현재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에 가장 큰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도 어떤 언급도 없이 북측의 선전문구만 앵무새처럼 나열했다.
北 노동자 배신한 민주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분단이후 최초로 북측의 노동자 대표단이 남측을 방문하였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이번 행사를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은 그러한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북한 일반 노동자의 월급(1~2달러)은 민주노총 조합원 평균임금의 3천분의 1 수준이다. 극심한 저임금으로는 일가족의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어 당장 오늘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는 것이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삶이다.
이들은 남조선 노동자들처럼 단결권, 교섭권, 행동권의 노동3권은커녕 직업 선택의 자유나 거주이전의 자유조차 없다. 또한 북한 노동자들은 아무런 미래도 없이 오로지 김정일 일개인을 위해서 평생 착취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북한의 노동자들은 8시간 근로시간 보장을 외치며 처절한 투쟁을 벌인 시카고의 노동자들의 삶이나, 전태일 열사가 노동 3권을 보장하라며 분신한 1970년대 한국 노동자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북한은 이미 노동자의 나라가 아니다. 60년대 말부터 김일성-김정일에게 자신의 노동을 바치고 배급을 타먹는 사실상의 노예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해왔고, 노동자들의 노동계급 의식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지금 북한에서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서다가는 단 10분만에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갈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북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남한의 노동단체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도리어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김정일 독재정권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 남측의 노동단체들은 북측 노동자를 억압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정권기관과 ‘노동자 대회’를 연 셈이다.
북한 직총은 허울만 노동자의 대표기구일뿐 사실상 김정일 독재정권의 괴뢰(傀儡-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자신의 실정과 무능을 선군통치의 미명 아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덮으려는 김정일의 망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김정일의 망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 역시 북한 주민, 북한의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이번 공동선언문에는 김정일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6.15 공동선언과 우리민족끼리의 정치적 구호만 외치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행사에 돈까지 지원한 정부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
노동절 행사를 빙자한 이번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는 역사적 비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1억 원의 돈을 퍼주고 김정일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있다. 남한에서는 조금의 근로시간 변경도 노동자를 착취하느니 하며 불법파업도 마다않는 노동단체들이 수십 년간 수령 독재를 위해 착취당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진짜 노동자를 위한 노동단체라면 세상 그 어떤 자본가보다 더 가혹한 착취를 일삼는 김정일 정권을 향해 투쟁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이제 열악한 북한 노동자들의 삶과 권익향상을 위해 남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김정일 타도’의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노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