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수석대표 급 놓고 ‘기싸움’ 결국 당국회담 무산

남북 양측이 11일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 ‘급(級)’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12일 예정됐던 서울 회담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 회담 결렬이 기싸움 형태로서 남북대화의 불씨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는 아니라는 관측이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저녁 긴급 브리핑에서 “북측이 우리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 삼으면서 북측 대표단의 파견을 보류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앞서 남북 양측은 이날 오후 1시께 판문점 남북 연락관이 중립국감독위에서 각각 5명의 대표단 명단을 교환했다. 우리 측은 수석대표로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단장으로 대표단 명단을 교환했다. 북측은 실무접촉 발표문을 통해 회담 단장을 ‘상급 인사’로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교환한 명단에 북측은 강지영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상급·장관급 주장)’으로 소개했다.  


이후 북측은 우리 측의 수석대표가 장관급이 아닌 것을 문제 삼아 이의제기를 했고 우리 측은 원안 고수 입장을 보이며 협의를 계속했지만, 북측은 이날 오후 7시 5분경 일방적으로 연락관을 통해 대표단 철수를 통보했다. 


남북 양측이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 실무접촉에서 각각 발표한 내용에 따라 우리 측은 수석대표로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북측은 ‘상급 인사’를 단장으로 통보했다.


김 대변인은 “실무접촉 이후 우리 측은 북측에 대해 단장 명단을 알려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북측은 명단의 동시교환을 고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측은 우리 측이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교체한 것은 남북 당국회담에 대한 우롱이고 실무접촉에 대한 왜곡으로서 엄중한 도발로 간주하고 북측 대표단 파견 보류한다면서 무산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당국에 있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북한이 그간 EU(유럽연합) 국가들과 대화를 개최했을 때 상대국의 격과 급을 맞춰온 관행이 있었다”면서 “북한의 부상과 상대국 국장과의 대화 시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거나 했던 사례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의 이런 입장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남북 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우리 측 당국자인 차관의 격을 문제 삼아 예정된 남북 당국 간 대화까지 거부하는건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북측이 대표단 단장으로 강지영 조평통 국장을 보낸 것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조평통 조직의 위상과 역할, 서기국 국장의 책임과 권한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장관 상대로 볼 수 없다”면서 하위 직책을 맡고 있는 인사를 ‘장관급’으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석대표 급으로 회담이 무산된 것은 형식논리에 지나쳤던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수석대표 급을 맞추는 것은 형식논리가 아니라, 남북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협의를 통해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첫걸음, 대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실질적인 대화를 하고자 해 차관이 수석대표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 원안을 고수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당초 정부는 지난 6일 통일부 장관 성명을 통해 ‘남북 장관급회담’을 제안했다. 이후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수석대표 급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남북 당국회담’으로 격하됐다.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면서 차관을 수석대표로 내세운 배경에 대해 “실무접촉에서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관의 상대방은 통전부장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면서 “북측은 통전부장이 단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 정부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관을 수석대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남북회담이 재추진될지 여부가 관심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급을 제기하고 입장을 고수하고 보류하겠다고 해 무산됐다”면서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어두고 북한이 책임 있는 자세로 당국회담에 응해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우리 측은 북측의 단장 급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측의 주장은 (강지영이) ‘상급’으로 차관은 안 맞으니 장관이 나오라는 것”이라며 “당초 취지는 의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장관급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고, 북측이 이를 협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년 4개월 만에 남북대화 재개를 하루 앞두고 회담이 무산됨에 따라 당분간 냉각기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양측이 수석대표 급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어느 한 쪽이 양보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적다.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국면이 지속되다가 최근 남북이 회담을 제안하고 발빠르게 추진되면서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이번 회담이 무산되면서 다시 대결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도 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물밉접촉 등을 통한 남북 간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특히 이번 북한의 대화제의가 중국의 압박에 의한 형태였고, 이달 말 한중 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될 수 있는 한미중의 대북압박 공조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