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시험운행’ 책임공방…꼬여가는 남북관계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운행 무산을 둘러싸고 남북 당국간 책임공방이 빚어지면서 남북관계가 꼬여가고 있다.

북측이 일방적으로 열차시험운행을 무산시킨 뒤 그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고 있으나 정부는 뽀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장관급 회담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26일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남북 열차시험운행 중단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권 단장은 전통문에서 “귀측 군부가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에서 급선무로 나서는 현안문제 해결을 완전히 외면하고 회피한 데 근본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서해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데 절실한 해상경계선을 바로 확정하는 문제’가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권 단장은 지난 20일 재향군인회 등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규탄시위 과정에서 인공기 화형식이 벌어졌던 점을 겨냥한 듯, “한나라당 극우보수세력들이…화형식 망동을 감행했다”면서 열차시험운행 무산 책임을 남측 군부당국과 ‘한나라당 극우보수세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권 단장은 “우리의 국기를 훼손시킨 범죄에 대해 똑똑히 사과하고 책임있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북측 권 단장의 전통문은 전날 우리측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남측 위원장인 박병원 재경부 차관 명의로 열차시험운행 연기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시한데 대해 답신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권 단장의 이같은 주장은 열차시험운행 무산 책임을 우리측에 떠넘기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논리적 설득력이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북측이 ‘남측 군부’ ‘한나라당 보수세력’ 등을 거론하면서 ‘도발행위’ ‘책임자 처벌’ 등 강도높은 어조로 남측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전통문 발신자도 우리측 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회담 북측단장인 권 책임참사인 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열차시험운행에 발목을 잡았던 북한 군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북측이 지난 24일 시험운행 취소 전통문을 보낼 때도 ‘불안정한 남한 정세’ 등 비슷한 이유를 들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통일부는 별도의 반박 성명을 내지도 않았다.

당국자는 “전통문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뭘 의미하는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새로운 내용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어제 우리가 전통문을 보내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한 자기들 입장표명으로 본다”며 “새로운 제안이나 새로운 요소들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어떤 식으로든 열차시험운행을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경색을 막아야 하는 정부로서는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가 쉽지않다는 상황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북측이 ‘적반하장’격으로 열차시험운행 무산책임을 우리쪽으로 돌리면서 ‘책임자 처벌’까지 요구하고 나선데 대해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날까지만 해도 당국자들은 북측이 경추위 제 12차 회의의 ‘6월초 제주개최’에 동의하는 전통문을 보내온 점 등으로 미뤄 경협위 회의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이와 함께 경추위 회의에서 경공업 원자재 대북 지원 등의 카드를 활용해 북측을 압박함으로써 열차시험운행 문제도 풀어나간다는 전술도 구사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북측이 일방적으로 열차시험운행을 연기한데다 그 책임 마저 남쪽에 전가함으로써 경공업 원자재 지원 등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 통일부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측이 5.31 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도 정부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김천식(金千植) 통일부 남북경제협력국장이 이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북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사업과 관련, “열차 시험운행 무산에 대한 국민감정도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같은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치권 등에선 정부가 열차시험운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게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는 경추위 등 남북대화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한 당국자는 “남북관계는 원래 굴곡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긴호흡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남북관계의 큰 틀은 유지하고 예정된 남북관계 일정과 대화도 그대로 진행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협위 일자도 북측이 수정제의한 6월 3∼6일안을 그대로 받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