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비료지원 외 다른 것 없다

남북차관급회담이 오늘부터 내일까지 개성에서 열린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남측이 북측에 꾸준히 남북대화를 촉구해 왔으며 북한이 이에 화답해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 명의의 대남 통지문을 통해 ‘당국간 회담’을 제의해 왔다고 한다. 그 ‘당국간 회담’을 북한은 줄곧 ‘실무회담’이라고 하고 남한에서는 ‘차관급회담’이라고 한다. 미묘한 엇박자다.

南 차관, 北 국장

양측 회담 대표단의 명단을 보면 남한은 이봉조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고 있고 북한은 김만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이 수석대표이다. 이 차관과 김 부국장은 2002년 8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대표접촉’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이 차관은 통일부 정책실장 직함으로 수석대표로 참석했고, ‘문화성 국장’ 직함을 사용해 온 김 부국장은 대표단의 일행이었다.

2001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부터 이 차관과 김 부국장은 만나왔는데, 줄곧 급(級)이 한 단계 차이가 났다. 물론 그 동안 김 부국장의 지위가 격상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스스로 제의한 그대로 무언가 실무적 타결을 보기 위한 ‘실무회담’으로 생각하고 실무자를 보낸 반면, 남한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어떻게든 높여보기 위해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놓았다.

이번 회담에 남한은 ▲남북관계 정상화 ▲인도적 지원 ▲북핵문제 등을 의제로 내놓을 것이라 한다. 북한에서 차관급이 오든 국장급이 오든 일개 사무원이 오든 결과가 좋고 그것이 실행만 된다면야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남한이 기대하는 이런 묵직한 의제에 비해 북한의 의제는 단순할 것이다. ‘비료를 달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 대해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육로 통한 비료지원 정도로 결정될 듯

북한은 비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북한에서 연간 필요한 비료는 120~150만 톤으로 추정된다. 그 중 70만 톤 이상이 봄철 파종기에 소비된다. 북한에서 자체로 조달 가능한 파종기 비료는 20~30만 톤. 대략 50만 톤 정도가 부족하다.

2003년부터 남한 정부는 매년 20~30만 톤의 비료를 지원해왔다. 2004년의 경우 복합비료 16만 톤, 요소비료 2만 8천 톤, 유안비료 1만 2천 톤 등 총 20만 톤을 봄철에 지원했다. 이러한 비료지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북한은 올해 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비료 50만 톤 지원”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지난해 7월 남북 당국간 회담이 중단된 이후, 비료지원을 회담 재개와 연계해놓았다. 북한은 계속하여 비료지원을 요구하였고, 심지어 남북정상회담 5주년 기념으로 남한이 북한의 평양에 건설해주기로 한 ‘6.15 통일기념회관’의 건립비용 150억 원을 비료와 농기구로 바꿔달라고 할 정도였다.

남한 내부에서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지난 5월 6일 ‘조건없는 대북 비료지원’을 촉구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12일 한신대 강연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심지어 반북(反北)의 선봉장으로 불리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마저 북한에 대한 비료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한의 북한문제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는 “늦어도 5월이면 북측으로부터 어떠한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5~6월이면 파종기니, 다급해지면 북측에서 먼저 ‘콜 사인’을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사실 이번 회담에서 비료지원 문제가 합의된다 해도 좀 늦은 감이 있다. 북으로 갈 비료가 배에 선적되려면 최소 수 주에서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이것이 북한에 도착할 때쯤 되면 갈증으로 쓰러져 이미 회복불능의 사람에게 물컵을 건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예년에 비해 진전될 만한 것이 있다면 해상을 통한 비료지원이 아니라 ‘육로를 통한 비료지원’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합의사항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문제는 의제로 삼지도 않으려 할 것

현재 북핵문제가 국내외의 최고 이슈이며, 이번 회담도 어떻게든 이와 연결해 해석해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통일부는 “북핵문제 악화와 관련, 우리측은 북측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핵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조평통 부국장을 앞장 세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남한 통일부 차관이 읽어 내려가는 이런 내용의 기조연설을 듣기야 하겠지만 고개 한번 끄덕이고 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요구(비료지원)를 내놓으며 회담을 마무리 하려 할 것이다. 반대급부로 남한이 남북회담 정례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이에 대해 원론적 측면 정도에서 동의해줄 것이다.

남한은 북핵문제를 의제로 삼으려 하지만 북한은 의제로 삼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혹시 북핵문제에 대해 북측 대표단이 언급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북한)는 이미 핵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 민족 공동의 핵이다”, “남한도 이런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핵문제에 대해 공조하자”는 류의 뜬금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가능성이 더 많다.

남한 정부는 ‘북한에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할 것이며 ‘이런 자리라도 마련되어서 다행’이라고 자찬할 것이다. 이제는 북한에 ‘입장을 전달한 것’이 성과가 되는 판이 된 것이다. ‘우리 의견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식의 회담이다.

이번 남북회담 개최를 보고 새겨두어야 할 교훈이 있다. 북한은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아쉬워지면 어떻게든 쭈뼛쭈뼛 회담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한 없이 약한 것이 김정일 정권이다. 궁극적으로 정권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강하게 나올수록 더욱 강하게 나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