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적용 가능할까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1992년 남북한이 합의한 핵통제공동위원회와 같은 방식으로 북핵 검증 작업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9일 한반도 비핵화를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있던 핵통제공동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렇게 가야될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회원국이었던 북한이 핵안전조치협정 서명과 국제원 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회피함으로써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 이 제기되자 남북의 핵을 동시에 규명하자는 취지에서 1992년 구성된 핵통제공동위원회 방식을 모델로 하자는 것이다.

핵통제공동위원회는 1992년 3월19일부터 12월17일까지 13차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에서 번갈아 개최됐으나 남측의 ’특별사찰’과 ’군사기지 사찰’ 주장을 북측이 거부하면서 성과없이 종결됐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남북 당사자끼리 해결하려는 최초의 시도로서 당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존중되었다면 지금은 상설기구화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방식론이 거론되고 있는데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당사자 원칙’에 의해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해 나가자는 정부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는 관측이다.

당시 회의에서 북측은 핵무기와 핵기지에 대한 사찰에 비중을 두고 ’의심동시해소원칙’에 따른 전면 동시사찰을 주장한 반면 남측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상호핵사찰로 맞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다만 8차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한 ▲정보교환 ▲핵사찰단의 구성.운영 ▲사찰대상 선정 ▲사찰절차와 방법 ▲핵사찰 결과에 따른 시정조치 및 분쟁의 해결 ▲신변보장 및 편의제공 등에는 합의를 했다.

양측은 여러 번 토의 끝에 핵물질과 핵시설의 정보를 교환한다는데는 의견을 접근했으나 핵무기와 핵기지에 대한 정보교환 문제는 의견이 맞섰다.

또 남측은 사찰규정 발효 후 10일 이내에 50명의 사찰관 명단을 상호 교환하고 이 가운데 20명 이내로 사찰단을 구성하자고 제의했지만 북측은 사찰단을 사찰대상에 따라 핵무기 및 핵기지에 대해서는 15명을, 핵시설에 대해서는 5명으로 각각 구성하자고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후 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는 팀스피리트훈련과 주한미군기지 사찰 문제가 이슈화하는 등 ’정치적’으로 변질하면서 삐걱 거리다가 결국 사찰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끝났다.

군사기지에 대한 사찰은 핵통제공동위원회의 소관사항이 아니라 군축검증 단계에서 군사공동위원회의 소관사항이라는 북측 주장과 특별사찰은 비핵화공동선언 제4항에 위반된다는 남측의 입장이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정에 더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와 같은 방식은 북핵 문제가 다자간협의 틀에서 다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남측의 ’희망’에 국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백승주 북한실장은 “미국은 남측의 사찰 능력과 의지 등에 회의적이라 핵통제위원회 같은 방식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IAEA가 사찰하는 방식을 더 선호할 것이며 관련국들도 미측의 입장을 존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사찰.검증)문제가 남북한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가 관여해 있어 핵통제위원회 등에 다른 나라도 참여시킬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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