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해운합의서 운명은

정부가 26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함에 따라 남북간 해운협력을 가능하게 했던 남북해운합의서의 운명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의 PSI전면 참여는 북측 선박이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대량살상무기 및 관련 물자를 운반중인 것으로 의심될 경우 그것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에 우리 정부가 동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PSI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천명한 북측으로서는 남북해운합의서를 폐기하는 것으로 맞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기원과 경과 = 남북해운합의서는 남북의 선박이 공해로 돌아나가지 않고 지정된 민족 내부의 항로대를 사용함으로써 경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만든 호혜적 합의다.

지난 2001년 6월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무단침범한 일이 합의를 도출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연안국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상선이 자유롭게 다른 나라 영해를 다닐 수 있도록 한 `무해통항권’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남북이 법적으로 정전상태에 있음을 감안,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북측 선박은 `상부의 지시’라며 제주해협 통과를 시도했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거나 무해통항권을 인정받기 위한 의도적 행동으로 해석됐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북측의 행위를 제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남북간에 정해진 항로대를 사용하고,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상대 항구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남북해운합의서 체결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남북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남북해운합의서에 가서명했다.

남북해운합의서는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5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정식 타결된데 이어 이듬 해 8월에야 정식 발효됐다.

이를 계기로 남북 상선들이 공해로 돌아나갈 필요가 없이 상대 측 수역을 단거리 루트로 다닐 수 있게됐고, 남북교역 관련 물류 비용도 크게 줄었다.

해운합의서가 정한 항로대를 통과하는 선박의 수는 남측 선박이 10배 이상 많지만 제주해협을 통과함으로써 400해리 가량의 뱃길을 단축할 수 있게 된 북측이 체감하는 이익은 남측의 그것에 못지 않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또 해운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남북 해사당국간 통신망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남북이 해양사고 등 유사시에 긴밀히 협조할 수 있었다.

◇PSI와 남북해운합의서의 관계는 = 외교부는 이날 PSI전면 참여를 선언하면서도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PSI에 전면 참여하더라도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른 해운협력을 하길 원한다는 의사표시로 풀이된다.

실제로 남북해운합의서에는 남북간 정해진 항로대를 운항하는 북측 선박이 무기를 싣고 있을 경우 관할해역 밖으로 퇴거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는 미측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 한반도 주변 긴장 고조 가능성을 이유로 PSI 전면 참여를 유보하면서 누차 남북해운합의서에 이 규정이 있음을 강조했다. PSI에 전면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남북해운합의서를 통해 북한의 문제 선박을 제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해운합의서가 되는 일을 안되게 하는 규제보다는 `안되던 일을 되게 하는’ 협력에 초점을 맞춘 합의라는 점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운반을 제대로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계속 지적돼 왔다. 실제로 해운합의서에 따라 북한의 `의심선박’을 제재한 사례가 사실상 전무했다.

◇북 해운합의서 파기시 어떻게 되나 =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26일 국회 외통위에서 `우리의 PSI 전면 참여를 계기로 북측이 남북해운합의서를 파기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정부도 그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해운합의서 파기는 결국 합의서를 통해 양측이 누려온 이익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경우 남측으로선 물자를 실은 선박이 직항로가 아닌 우회로를 사용하게 되는데 경제적 손실과 남북교역의 위축 등 피해가 예상된다.

북측 역시 제주도를 우회해서 공해로 다니게 되면 경제적 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북측이 해운합의서를 파기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최근 북한의 초강경 대외기조로 미뤄 남북관계의 추가적인 단절 차원에서 해운합의서 파기를 선언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당국과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특히 북측이 최근 개성공단 관련 혜택 박탈을 선언하면서 `6.15를 부정하는 자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논리를 폈음을 감안할 때 6.15공동선언 채택 이후 남북간 화해무드 속에 도출된 해운합의서도 정치논리에 의해 파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