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통일은 세계사에서 가장 까다로운 유형

요즘 통일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남한 국민 대부분의 통일관을 결정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공포증’이 아닌가 싶다.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증은 어느 정도 과장도 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흡수통일이 야기할 수 있는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화, 사회, 정신적인 문제는 적지 않다.

바다의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생물은 고압(高壓)에 익숙해서 갑자기 수면으로 올라가면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생물처럼 ‘선택의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온 북한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선진국 사회로 빠지면 심한 정신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또 흡수통일의 경우에는 남한 출신, 북한 출신 사이의 갈등과 불신은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주장을 들으면 흡수통일에는 대안이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안은 ‘단계적인 통일’이다. 그들은 북한에 중국식 개혁을 시작하여 ‘개발독재’ 정권이 장기간 경제성장을 통해서 남북 경제격차를 없애고 조화로운 통일을 위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번 주장한 바와 같이 이러한 시나리오가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성이 없는 시나리오로 본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개발독재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 나라에서 ‘또 하나의 중국’이나 ‘또 하나의 베트남’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남한에 대한 매력이 너무 커서 북한 주민들이 서울 생활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개발독재의 정당성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기다려서 경제성과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자유와 번영의 땅인 남한과의 흡수통일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를 훨씬 더 빠르게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이 희망이 ‘환상’이라고 해도 북한 민중의 압력 및 그들의 요구를 가로막을 세력이 없을 것 같다.

과도기 임시헌법 ‘통일조약’에 담길 내용

그러면, 흡수통일도 어렵고 분단유지도 불가능하다면, 이들 시나리오를 결합하는 정책이 있지 않을까? 필자의 생각이 다소 ‘환상’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와 같은 정책을 한번 추론해보고 싶다.

필자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입장은 통일의 필요조건 중의 하나가 현 북한체제를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남북통일 이후 특권과 재산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단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북한 정부는 김정일 이후 등장할 북한정권, 즉 통일을 진실로 원하는 정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권은 ‘민주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을 수도 있고, 또는 김정일의 사망 이후 평화스럽게 발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정부는 북한 민중의 압력으로 시장경제 및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순응하는 통일 국가를 이룩할 의지가 있어야 된다. 이러한 정권을 편의상 ‘북한 임시정부’로 불러본다.

북한에서 임시정부가 발생한다면 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통일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겠다. 조약의 기본 내용은 통일을 즉시 하는 것보다 일정한 기간 동안 남북이 같이 북한의 사회, 경제, 정치를 현대화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통일을 위해 튼튼한 기반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이 ‘일정한 기간’을 명확하게 정해야 하는데, 10~15년 정도면 좋다고 생각된다. 이보다 짧으면 준비를 잘 할 시간이 없고, 더 길면 북한 민중들이 이러한 계획을 그들의 어려운 생활을 연장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통일조약’을 반대하고 즉각적인 통일을 요구하고 나설지 모른다.

어쨌든 일정한 기간을 정확하게 정해야 하고, 이 기간동안 남북이 취해야 할 조치도 뚜렷이 명기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통일 조약’이 완전 통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정확한 지도, 즉 로드맵(road map)으로 여기면 좋겠다는 것이다.

‘통일조약’은 과도기 동안 남북한 통일국가의 임시 헌법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내용은 어느 부문에서 언제까지 어떤 정책을 해야 하고, 또 완전통일까지 남북한의 법률, 제도가 어느 정도 다르며, 통일준비 기간 동안 북한 사람들의 권리나 제한이 무엇인지 등등이 담겨야 할 것이다.

필자 보기에 통일 과정을 정하는 조약은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현 북한정부를 대체하는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통일논의가 시작되면 남한 엘리트들이나 남한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집단 승리자’로 여기고 북한 주민들을 ‘집단 패자’ 아니면 ‘값싼 노동력’으로 여기는 경향이 발생할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북한을 ‘개발’해야 하는 ‘신 식민지’로 볼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통일한국의 장래를 위해 좋지 않다. 북한이 60년 전에 했던 옳지 않은 정치적 선택은 남북 사이의 커다란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지만, 남한 사회의 의무는 이러한 불평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극복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북한에 도입해야 할 것은 정치적 자유 및 민주 정치라고 생각된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며 자유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이같은 자유화는 물론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또 양국은 처음부터 공동 외교정책 및 군사 재편을 해야 한다. 군사 재편 분야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 군관(장교) 출신들을 통일한국 군대로 입대시키는 것이다. ‘통일조약’에서 처음부터 명백하게 해두어야 할 사항은 통일군대의 약 30% 정도의 장교를 북한군 출신에게 할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당분간 통일군대의 군사력이 약해질 수도 있지만 북한 특권층의 중요 부분인 군관계층에서 반통일적 감정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또 군대에서 물러난 북한 군인들은 사회적 실망이 크기 때문에 매우 폭발적인 사회적 세력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은 사회안전부(경찰)와 보위부(정보기관)이다. 군대는 주민들을 탄압한 세력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안전부나 보위부는 김정일 정권의 살인적인 독재의 중요한 기구였으니까 성격이 다르다. 통일한국의 치안기관이나 정부기관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보위부 출신을 고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위부 직원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와 저항이 가져올 정치적인 협박을 무력하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들과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타협은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일반 사면’이다. 즉 보위부 출신이라고 해도 김부자(父子) 정권 하에 저지른 죄 때문에 통일한국에서 처벌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반사면은 아주 중요한 정책인데, 이 일반사면을 보장하는 항목이 ‘통일조약’에 포함돼야 한다. 또 일반사면에 대한 이러한 약속은 매우 명백하게 공식화해야 한다. 물론 일반사면이 탄압 및 학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의 동유럽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정화법’ (lustration law)은 탈(脫)김정일 북한에서도 실시가 가능하다.

정화법에 의하면 공산주의 시기 비밀경찰, 장교나 정보원, 아니면 공산당 고위간부 등을 지낸 사람들은 민주국가의 기관에 취업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같은 취업제한이 형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통일한국의 경우에도 보위부에서 일정한 직급 이상의 직원이나 노동당 고위 지도원으로 지낸 자들에 대한 취업제한은 가능하지만, 그들을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는 약속을 명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명기가 없을 경우, 수많은 간부들이나 보위원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정보가 계속 노출되면 그들에게 중벌을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반대하기 어렵다.

김정일 정권 바뀐 후 대량 남한 이주문제

요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통일 공포증’을 더 자세하게 분석하면, 북한 주민들이 빈곤을 피하기 위해 대량으로 이주하여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이같은 우려가 통일 공포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이기심으로 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지키고 싶어하는 남한 주민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대량 이주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남한의 중산층보다 서민들이 되기 쉽다. 남한 서민들 중 밥 세 그릇의 값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북한에서 온 육체 노동자들을 경쟁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남북 갈등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임시적이라고 해도 북한주민들의 남한 이주를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를 ‘통일조약’에 명기하고, 실시 기간도 정해서 정확하게 알려주면 이러한 조치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첫 5년 동안은 북한인들이 남한으로 가려면 남한에서 온 초청장을 제출하고 사증(비자)과 같은 방남 허가증을 받아 방문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5년 이후부터는 북한인들이 자유롭게 남한에 갈 수는 있지만 취업권이나 장기 체류를 금지하는 것이다. 물론 가족들과 같이 살아야 할 노인들의 경우에는 특별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정책이 북한인들의 민주주의 권리를 어느 정도 침해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통제가 없는 이주는 남한 서민들에게 심한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남북 갈등과 적대감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은 불가피한 타협으로 보인다.

토지소유 문제 매우 중요

‘통일조약’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로 토지소유가 있다.

필자가 여러번 주장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이북에서 1946년에 실시된 토지개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주 폭발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1940년대 말 월남한 지주의 후손들은 지금도 토지문서를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통일한국의 사회적 통일성에 심각한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자료이다. 만약 토지와 부동산에 대해 과거의 소유권을 인정하게 된다면 남북간 적대감과 불신감이 야기될 것이다. 그래서 ‘통일조약’에서 토지개혁의 결과를 명확하게 인정해두어야 한다.

또 협동농장의 해산도 불가피하게 보이는데, 해산 이후 이북 땅에 대한 재분배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북한주민에 한한다는 점을 명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협동농장의 해산 이후 협동소유로 위장했던 국가의 땅을 개인소유로 분배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은 협동농장의 농민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불가피한 제한은 대북 투자에 관한 것이다. 남한의 대북투자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살림 집 및 경지에 대한 소유권이다. 북한 사람들이 경험과 자본이 많은 남한 부동산 투기꾼들의 희생자들이 되지 않도록 남한 주민들은 완전통일 때까지 이북에서 주택과 부동산에 투자할 권리가 없어야 된다. 즉 ‘통일조약’의 과도기 동안 남한 사람들은 이북에서 직접 살림 집을 구입할 수 없고 경지도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의 목적은 이북 부동산 가격의 급증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살아온 집에서 나와야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이주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제한만이 아니라 중요한 특권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북한출신 신입생의 할당량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서울에 사는 학부모들의 짜증을 야기할 수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조치이다. 만약 새로운 지식, 기술 엘리트층이 북한에 형성되지 못할 경우, 북한사람 1세만이 아니라 2세, 3세까지 경제적인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사람은 계속 ‘2등 국민’으로 남아 있게 되고 이러한 차별을 인정하는 ‘통일한국’을 자신의 나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의 학제와 교육문화, 전통 등을 감안하면 고급 전문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곳은 서울의 몇 개 명문대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중등교육의 잘못과 특성 때문에 북한 입시생들은 경쟁률이 너무 높은 서울의 명문대 입시에서 남한 입시생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 출신들의 입학 할당량을 정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정책은 남한사회의 수많은 이익단체들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받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 중 가장 위험한 세력은 과거 이북의 지주 출신들이지만 다른 저항세력도 다양하고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희생해야 된다. 이같은 이익단체의 압력으로 대북정책이 왜곡되지 않도록 임시 헌법의 성격을 띤 ‘통일조약’에서 이러한 정책에 대해 명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 재건 문제 지금부터 논의해야

물론 ‘통일조약’에 따른 양국의 단계적인 통일은 한반도라는 땅에서 천국을 건설하는 설계도가 결코 아니다. 이러한 계획도 부작용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10~15년 동안 북한에 과도적인 국가 정체성을 인정한다면 현 집권층 출신들이 국가에 대한 전반적인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간부출신의 자식들은 수십년 동안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임시헌법 하에서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일정한 제한이 인정되니까, 이것은 나중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경우에는 양국 통일이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이 어려운 문제여서, 복잡한 타협의 과정 없이는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물론 필자가 언급한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나 남한 주민들이 다른 제안을 해주면 좋겠다.

북한문제는 현 북한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재건설을 위한 정책을 노골적으로, 실천적으로 토론할 때가 왔다. 지금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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