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같이 국제 ‘방콕족’ 되나?

▲ 6.15 정상회담 당시 모습 <사진:연합>

‘방콕족(族)’ : 사회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일본처럼 최근 한국에서도 젋은이들의 ‘방콕 증상’이 사회 문제로 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족’ 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은 20~3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5월 6 일자 조선일보).

그런데, 이것과는 다른 ‘방콕 증상’이 한반도의 북부에서 남하하고 있다. 제2차 북핵위기를 둘러싼 국제정치 버전의 ‘방콕족’이 등장했다. 핵문제가 막바지로 넘어가고 있는 가운데, 향후의 한반도 정세를 점치는 키워드는 ‘방콕족’이다.

김정일은 ‘선군정치’에서 ‘선군혁명’으로 달려가면서 한층 더 심각한 ‘방콕 증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핵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민족주의적 성향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민족공조에 휘말릴수록 북핵 평화적 해결 어려워

최근 유행어 중에 ‘우리 민족끼리’(북한의 신조어)라는 말이 있다. 이것에 호응해 기존의 ‘민족공조’(이것도 북한의 신조어)를 ‘민족동맹’으로 확대하려는 기미가 감돈다.

‘민족동맹’이란 용어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한국 일간지의 신조어다(5월 25 일자 문화일보). 다행히 아직 유행어로 발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민족동맹’이 성립하면(한국과 북한 모두 국제사회의 ‘방콕족’이 된다면), 그 순간 ‘대화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은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그렇게 되면, 유엔의 제재 비롯해서 미국의 선제공격, 혹은 ‘핵균형’을 위한 동아시아의 군비확장 경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김정일은 국제사회의 ‘방콕족’

북한의 ‘방콕 증상’은 꽤 심각한 중증으로 손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은둔형 외톨이족’들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혼자만 따로 식사 하거나 가족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가족들이 인사만 해도 화내거나 물건을 내던지는 과격한 행동을 취한다.”

이 특징은 김정일 정권과 똑 같다. 말하자면 국제사회의 ‘방콕족’이다. 6자회담에 결석하며 느닷없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개혁개방을 거절해 대량아사사태를 일으키고,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과도 대화를 거부하고, 미국이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인사를 건네면 미사일이나 핵병기로 위협하는 과격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젊은이의 ‘방콕증상’은 자살이나 살인의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김정일의 ‘핵보유형 방콕증상’는 자살과 타살 행위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벌써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김정일, 결국 군대를 통한 장기집권 선택

5월 23일자 <노동신문> 사설에서는 ‘반미 대결전과 선군혁명의 수호전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혁명적 총공세’를 주장하고 있다. 일상적인 북한식 선동구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군혁명’이라는 용어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선군정치’와는 또 다른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선군혁명’이라는 불길한 용어는 암시하는가? 10년 가깝게 계속된 선군정치가 마침내 ‘양질 전환의 법칙’에 의해 무엇인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가? 최근 RENK는 이 새로운 용어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잡았다. 북한 정치구조의 변화를 암시하는 내부 정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6자회담이 중단되었던 지난 1년간, 북한의 중심권력 내부에서 생긴 인민군과 노동당의 갈등과 대립이 일단 마무리된 듯 보인다. 인민군의 대역전 승리가 확정된 모양이다. 김정일은 인민군(선군정치의 핵심역량)을 ‘영원의 반려자’로 결정한 것 같다. 그 표현이, 정치 외교적으로는 일련의 핵소동이며, 또 군수부문 이외의 경제분야(당경제부문과 민생 경제부문)에 군인들이 진출한 것이다.

올해 4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폐막된 후, 북한의 주요한 공장과 기업소에서 큰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인민군이 전문 검열부서를 신설해, 공장과 기업소에 군대의 검열요원을 파견해 선군정치의 수행상황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극적인 변화다.

지금까지는 공장과 기업소마다 당위원회가 세워져 해당 당서기가 지배인을 지도(정치적으로 지배)했다. 이러한 당서기에 의한 기업소 지배구조가 북한의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구조적인 문제점 이라고 지적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북한당국은 2002년 7.1경제개혁조치를 통해 내각(실무자 집단)의 권한강화를 꾀해, 공장 지배인의 역할을 강화해 왔다.

그런데 최근, 역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선국정치가 모든 경제분야를 지도하는 오늘의 북한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난폭했던 군부도 그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공장에 억지로 찾아와 당서기나 지배인과 격렬한 말다툼의 끝에 생산물을 강제로 빼앗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고 모두 넘겨라!”며 위협하는 군인들 앞에서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해도 알을 낳는 닭까지 먹어 버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합니까?”라며 공장 당서기와 지배인이 저항했다.(RENK 내부 보고서.<2004년 양강도 사회정치 경제 개관>)

하지만, 이제부터는 ‘선군정치의 수행점검’이라고 하는 합법적 명분을 얻어 군대가 자기들 마음껏 탈취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공장당서기나 지배인을 군사법정의 의자에 붙들어 맬 수가 있는 것이다.

경제까지 군부가 장악

북한은 전반적인 사회경제 활동의 침체로 군수산업( 제2 경제부문)의 경우 현재 가동률이 15%정도까지 떨어졌다. 군인 검열요원의 파견은, 이 가동률을 끌어올려 군수산업을 재생하려는 계획이다. ‘낙지가 자신의 다리를 먹어 장수하는 것’ 같은 이치지만, 그야말로 경제에 대해 일자무식한 군인들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선군정치’를 ‘선군혁명’으로 부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결국 ‘선군혁명’이란, 김정일식 ‘방콕증상’이다.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착실한 사회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리고 핵무기의 껍질 속에서 두문불출하는 모습이 똑같다. 과연 이러한 김정일의 ‘방콕증상’이 북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 재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평화적인 해결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소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보다 더 한심한 문제는, 김정일식 ‘방콕증상’이 특이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괜찮은 것 같은데 유독 한국만이 허약한 면역성을 보이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동맹 복원해야

김정일은 한국정부도 함께 ‘방콕족’이 될 수 있다고 계산하는 것 같다. <6.15선언 5주년 공동행사>를 미끼로 민족주의를 부추겨 한국정부를 ‘민족동맹’에 끌어 들이는 작전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논쟁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민족주의 열풍’에 빠져있다. 과연 노무현 정부가 김정일의 계산을 간파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민족동맹’의 유혹에 빠져 국제사회로부터 멀어지는 ‘방콕증상’에 휩싸이게 될까? 여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다.

운명의 때는 가까워 오고 있다. 최대의 절정은 6월 10일에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일 것이다. 이 회담은 한국정부가 북한의 ‘통역’겸 ‘전령’으로 나서는 ‘변칙적인 미북협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삼각동맹’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민족동맹’을 선택하게 되는 형국이다.

이영화/일본 간사이대 경제학부 교수


– 일본 오사카 출생(1954)
– 평양 조선사회과학원 유학(1991)
– (現)간사이(關西)대학 경제학부 조교수
– (現)<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대표
– 주요저서<북조선 수용소군도>, <재일 한국, 조선인과 참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