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한반도 문제 주체임을 분명히 하자

최근 남북정상회담관련 보도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원칙있는 대화’를 강조하고 ‘북한 길들이기’를 천명하며 이에 대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고, 2009년들어 북한이 미사일 및 핵 실험을 할 때만해도 남북 정상회담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북관계도 큰 틀에서 보면 정치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속설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당국간 대화가 지속되고 급기야 정상회담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대남 및 대외 관계를 유연하게 풀어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외형적으로는 거의 조건없이 미국 여기자 2명,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연안호 선원 등을 석방하였다. 그리고 지난 해 8월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조문사절단으로 방남한 김기남과 김양건 등은 남북 정상회담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후 10월에 싱가포르에서 남한의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비밀리에 회동,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목적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의견접근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북한은 정상회담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구하고, 남한은 북핵문제 및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동상이몽’인 것이다. 남한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북핵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요구하는 것이고,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형식적’ 정상회담 개최에 응하는 대신 대규모의 경제지원을 획득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내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이다.


첫째의 국내적 차원은 무엇일까? 현재 북한의 식량난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월 2일자 ‘좋은 벗들’에 의하면 함경남도 단천지역에서는 1990년대 중반처럼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11월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한 대신 돈이 부족하여 노인이나 병약자같은 상대적 약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중국으로부터의 밀무역을 용인하였으나 화폐개혁 이후 외화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식량 유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내 암시장이 약화되고 식량부족이 심각해 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근간인 보안원들까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DailyNK, 2월 2일 보도 ). 만일 말단 공안조직이 붕괴된다면 북한내에는 대규모 폭동이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정권붕괴까지도 갈 수 있는 문제이다.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식량부족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고, 지난 1월 1일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농업과 경공업을 ‘주공전선’으로 삼을 정도가 되었다. 더구나 김정일은 생존시 김일성의 ’교시‘인 ’이밥에 고깃국‘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자인하였다(노동신문, 1월 9일자). 김정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


중국에게 ’굴종‘하여 대규모 식량지원을 받는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든지 아니면 당장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식량 수십만톤을 지원받든지 하는 것 등이다.


문제는 핵포기가 쉽지 않고 그로 인해 중국이나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 획득이 어렵다는 점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당장 지금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규모 식량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은 남한밖에 없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원하는 이유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문이다.     
 
두 번째의 국제적 차원은 무엇일까?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한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는다. ‘미제’의 하수인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과 아무리 깊이 있고 실질적인 논의와 합의를 한다 할지라도 미국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북한은 본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이 수행하는 남한과의 대화는 매우 전술적이고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필요할 때 적절히 대화하고 실리를 취하면 된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이다. 특히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핵공격’에 대비하는 것인만큼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다.


미국에 ‘종속된’ 남한이 북한의 안보를 담보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이고 남한과 북핵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 입장은 부시 정부 못지않게 원칙주의적이고 다자주의적이다. 북미 직접대화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특히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북미대화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선 6자회담 복귀’를 압박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남한의 동의없이는 북미 직접대화가 불가능함을 암암리에 북한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매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은 북미 직접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남한을 견인하려는 것이다.


만일 남한이 남북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북한은 미국에게 ‘남한책임론’을 피력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남한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대규모 식량지원을 얻어내는 부수적 효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후계문제 조기정착, 통일주도권 확보, 대남 통일전선 전술, 대중 의존도 축소를 위한 대외의존 portfolio(분산투자) 등이다.


그러나 현 국면에서는 위의 첫 번째 이유인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때문일 가능성이 보다 높다. 김정일은 남한이 진정으로 ‘비핵 개방 3000’이나 ‘그랜트 바겐’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은 것이다.


김정일은 주민들이 ‘강냉이밥’을 먹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노동신문, 2월 1일자). 어떻게든 먹는 문제만큼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같다. 물론 ‘이민위천’ 논리도 있지만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것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점이다. 그는 정상회담 의제로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북핵문제, 국군포로 및 납북자문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일은 현재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해안포를 쏘아 대남 압박을 해보았지만 남한 주민이나 경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대가없는 정상회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남한의 요구를 들어주고 경제지원을 받을 것인 지이다.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타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을 통해 핵문제나,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해 논의는 하되 ‘합의문’은 발표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고 금년내에 다시 만나면 되는 것이다. ‘이벤트성’이 아닌 ‘실무 정상회담’이 정례화되는 것이다. 물론 그 대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국군포로나 납북자가 보다 많이 포함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년내에 2회정도 실시되고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이 재개되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대화조건’이 아님을 명백히 했다(2월 2일,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즉, 대북 식량 지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일회성’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규모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이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북한의 ‘식량획득 전략’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굶주린 사람을 상대로 정치적 포석을 하는 것은 매우 비인도적일 수 있고 비난의 소지도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이 자주 열릴 수 있는 현실이 아님을 감안할 때 우리는 선의의 입장에서 금번 남북 정상회담을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이 진정으로 남한을 ‘주권국가’ 즉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남한과 진정성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의 국력은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가 되었다. 미국도 남한을 무시하고 한반도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한이 끝까지 미국의 ‘발목’을 잡으면 미국도 남한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북한 또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언제까지 ‘미제 신식민지론’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것인가.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주체’임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현재 북한 식량상황이 매우 긴박하고 북한이 남한에게 메달린다고 해서 ‘북한 항복론’에 메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은 자존심을 포기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로 경도될 수도 있고, 대남 무력공격이나 자살폭탄테러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승리감’에 넘친 나머지 지나치게 북한을 코너로 몰아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까지 긴장을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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