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축구 ‘깜깜이’ 논란…평양 주민들에게도 ‘극비’였다?

평양 소식통 "주민들 경기 열렸는지조차 몰라…패했을 때 영향 우려했을 것"

한국과 북한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관중석이 텅 비어 있는 가운데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 경기가 ‘깜깜이’로 진행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경기는 북한 당국이 평양 주민들에게조차 알리지 않는 등 내부적으로도 극비리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도 경기 결과는 주민들에게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평양 소식통은 17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아직도 많은 평양 시민들은 북남(남북) 축구를 했는지,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있다”며 “이제 며칠 있으면 입소문을 통해서 퍼져나가겠지만 (당국으로부터) 통보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앞서 북한 체육계 관계자들을 통해 평양 시민들 사이에 남북 축구 경기가 열린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여기에 한국의 유명 축구선수가 온다는 것까지 소문으로 돌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일 뿐, 북한 당국 차원에서는 아직도 경기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실제 이번 경기는 초유의 ‘무관중’ 상태로 치러졌다. 북측은 경기 전날 진행된 사전 미팅에서 4만 명 정도의 관중이 김일성경기장을 찾을 것이라고 알려왔지만, 정작 당일 관중석에서 일반 관람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 당국은 통상적으로 경기가 있을 때마다 기관기업소 별로 표(배정표)를 나눠주고 조직적으로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각 기관기업소에 표가 배급되면 곧 이를 사고파는 암표거래 시장이 형성돼 일반 주민들이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표를 구매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이번 남북전의 경우에는 당국의 경기 일정 통보는 물론, 표 배급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경기가 열린다고 하면 당연히 기관기업소 별로 표를 나눠주고, 이 표를 야매로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번에는 어느 날짜에 (경기를) 하는지 통보도 없었고 남측 선수들이 오는 날도 전혀 알지 못했으니, 반응이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관중이 없는 상태로 경기가 치러졌다는 이야기에 “아마 늦어도 일주일만 지나면 소문이 돌 텐데, 비난의 목소리가 일 수도 있겠지만, 당(黨)에서 내린 결정이니 대체로 그러려니 하는 주민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대 0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됐다는 데 대해서는 “평양 시민들은 지금 무승부로 끝났다는 것도 대체로 모르고 있다”며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간부들과 대학생들일 것인데, 결과가 비겼다니 차라리 보지 않길 잘했다는 반응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소식통은 “(주민들이) 입 소문으로 무승부로 끝났다는 것을 안다면 잘 못하는 남자축구도 이번엔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주민들은 (남자 축구는) 남조선(한국)이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자 축구는 우리가 최고라고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축구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 북한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공식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북한이 이번 축구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른 배경과 관련해서는 현재 여러 가지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북한의 축구 전력이 한국에 비해 열세인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패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이번 무승부 경기를 포함하면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1승 9무 7패를 보여 역대전적에서도 크게 밀린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한국은 37위, 북한은 113위다.

소식통은 “왜 이런(무관중)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직 최고지도자(김정은 국무위원장)만 알뿐”이라면서 “대략적인 짐작은 해볼 수 있는데, 우선 가장 첫째는 남조선(한국) 축구팀에 패배하는 경우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크게 우려했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더욱이 수도 평양, 14년째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김일성경기장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경기에서 질 경우 주민들의 대남인식과 여론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수습하기도 어렵다는 내부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 소식통은 “현재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매일같이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 북남 축구로 해서 평양 시민들에게 잘못된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라며 “또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면서도 은근히 남조선에 대한 환상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