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체육교류 어떻게 진전돼왔나

지난 1963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 남북이 만난 이래 올림픽단일팀이 구성 합의까지는 42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1963년 스위스 로잔을 비롯 홍콩 등지에서 남북한은 3차례에 걸쳐 단일팀 구성을 위해 만났으나 모두 실패했다.

1979년에도 제35회 평양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노력이 4차례에 걸쳐 있었으나 역시 양측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84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만남도 소련 등 공산국들의 불참으로 헛되이 흘러갔고 ’88서울올림픽 단일팀 구성 및 공동개최 문제를 위한 협의도 3년간 4차례에 걸쳐 양측이 조율했으나 북한 측이 IOC의 수정안을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노력도 1989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무려 9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나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90년대가 들어서면서 양측은 화해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남한과 북한은 4차례에 걸쳐 만남을 가진 끝에 탁구단일팀 파견 및 축구단일팀 구성에 전격합의했다.

무려 단일팀 구성을 위해서 27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

이에 따라 한국과 북한은 일본 지바에서 열린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1개씩, 동메달은 2개를 따는 커다란 수확을 올렸다.

1991년 5월부터 약 두 달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는 남북 각각 31명씩이 참가해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낳았다.

이후 양측은 근 10년간 이렇다할 접촉을 하지 못하다가 다시 1999년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통해 체육교류 불씨를 되살렸고,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올림픽사상 최초로 남북한 공동입장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후 남북체육교류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공동입장을 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런 빈번한 접촉과 노력끝에 결국 2005년 11월1일 ’아시아의 진주’ 마카오에서 2006도하 아시아경기대회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 구성에 전격합의하게 된 것이다

한편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종합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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