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평양 개최 (2000.6.13~15)

대통령 김대중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가진 정상회담으로, 이는 김정일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남북한의 정상이 직접 만나기는 1945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5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회담의 주요 내용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남북간 교류와 협력 등이다. 회담의 성과는 대결의 냉전질서 종식과 화해 및 협력의 역사적인 계기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구상은 제5공화국 때 최초로 공식 제안되었다. 1985년 김일성 주석이 실현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남북간에 접촉이 있었으나 그 실현에는 이르지 못했다. 제6공화국에 와서도 이의 실현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성사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민정부는 정상회담 개최에 대하여 적극성을 보였다. 대통령 김영삼이 1993년 2월 25일 취임사와 1994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히자 북한은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통하여 이를 수락했다.

이에 따라 남북간에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판문점에서 열고, 1994년 7월 25일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회담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김대중은 1998년 2월 25일의 취임사, 3·1절 기념사를 통하여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 교환과 북한이 원한다면 남북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는 등 남북 정상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99년 3월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이던 대통령 김대중은 “한국정부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향한 ‘베를린선언’을 발표했다.

베를린선언 후 북한은 회담의 개최 의사를 밝혔고, 이에 따라 2000년 3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간 첫 접촉이 있었다. 그 후 베이징에서 수차례 비공개 협의를 가진 뒤 4월 8일 남북간 최종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합의서에 따라 4월 22일부터 5월18일까지 판문점에서 5차례의 준비접촉을 갖고 대표단 수행원수, 취재기자수 등에 관하여 최종 합의를 이루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보게 되었다.

The DailyNK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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