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진정성 없으면 무의미”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최근 공식 브리핑에서 북한 김정일이 이명박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다는 발언을 하면서 그동안 남북 간에 정상회담과 관련해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를 두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미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18일 “우리는 지금 갑작스럽게 북한이 우호적으로 나오는 단계에 도달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하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로버트 게이츠(Gates) 국방장관의 아시아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 동행하는 기자들을 위한 브리핑에서 “북한이 다음에 취할 단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관계자는 김정일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정상회담 개최 의향을 밝혔는지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개최 논란은 이번 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말 북한에서 파견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사절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정상회담 관련 언급을 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과 외교안보수석실은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일부에선는 오보 논쟁까지 제기됐다.

이같이 청와대가 부인한 내용이 미국서 터져 나오자 정부 관계자들은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 간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가 진전이 이뤄진다면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 8월 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후 이 대통령을 만난 북한의 조문사절단도 관계개선 의지와 함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김정일의 메시지를 가져왔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2개월 만에 말이 바뀐 것 아니냐”고 하자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쪽에선 ‘입장 변화’를 시인했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원론적 언급이 오간 것에 불과한데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일단 부인했다는 것이다. 한 핵심 참모는 “확대(해석)될 얘기가 아닌데 보도가 나오면 여기저기서 오해를 한다. 일반론을 말한 것인데 ‘진행형’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인)했다”고 했다.

반면 다른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 조문단이 일부 우리측 인사들을 만나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했을 지는 몰라도 이 대통령을 만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북측의 언급에서 정상회담을 연상시킬 만한 내용은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정상회담 추진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측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자’는 분명한 언급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남북정상회담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필요성이나 당위성, 남측을 유인하는 방법으로 관련 발언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18일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정략적, 정치적, 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 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 수석의 이 발언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서는 그냥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등 남북관계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전 정상회담처럼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남북 간 접촉에서 정상회담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제재국면에서 미국이나 주변국의 오해를 유발하 수 있고 국내적으로 ‘남북 간 대화를 거부한다’는 여론의 공세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상회담 논의 자체를 부인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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