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모든 ‘비계’를 빼버리자

2일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된다. 대강의 일정은 1일 발표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휴전선을 넘는 ‘행사’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광장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관하는 행사도 있고, 환영만찬, 아리랑 공연 관람, 개성공단 방문 등등의 행사가 계속된다.

행사는 말 그대로 행사일 뿐이다. 순간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행사는 그 다음의 남북관계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지나간 ‘거품’이 된다. 고기로 치면 ‘비계’다. 고기는 비계가 적당히 있어야 맛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점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의 ‘살점’은 어디까지나 제1항, 제2항… 식으로 발표될 ‘공동선언’이다. 여기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와 전반적인 동북아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다음 중요한 살점은 노-김이 나누게 될 ‘대화’이다. 두 사람의 대화가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식으로 거창하게 나갈 수도 있고, 실무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사, ‘살점 중심’ 보도로 가자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회담에 임하는 노대통령이든, 정상회담을 보도하는 언론이든, 부디 이번 회담은 비계를 빼고 살점 위주로 나가자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휴전선을 걸어서 넘겠다는 발상부터 이미 이번 정상회담에 비계를 듬뿍 넣어 보겠다는 속셈이 읽히지만 언론이라도 제대로 비계를 빼보자는 이야기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비계가 적지 않았다. 김정일이 은둔의 지도자가 아니라느니, 통이 크다느니, 술 실력이 어떠니 하는 비계 중심 보도 때문에 정작 남북공동선언 1, 2, 3, 4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칠 영향은 어떤 것인지는 뒷전이었다. 게다가 공동성명 작성에 진짜로 ‘진통’이 심했는지는 몰라도 밤늦게야 공동성명 내용이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곧바로 깊이 있는 분석이 뒤따르지 못했고 그 사이 TV에는 계속 수다 떠는 김정일의 모습만 방영되었다. 오늘(1일) 아침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도 노-김이 5차례 이상 만날 예정인데, 공동선언은 3일 밤 늦게야 서명할 것이라고 한다. 밤늦게 긴장도를 높여가며 심리전으로 나오는 것은 70년대 정홍진(전 중앙정보부 국장),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이 방북했을 때부터 김일성이 사용해온 낡은 프로파간다 수법이다.

따라서 우리 언론들은 이번이 두 번째 정상회담인 만큼 되도록 정확한 분석, 해설 위주의 ‘살점 중심’ 보도로 나가보자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그림이 다양하게 받쳐줘야 하는’ TV는 어쩌란 말이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TV라고 해서 무조건 행사 중심으로 편성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늘 오후 데일리NK 편집국으로 독일의 KBS에 해당한다는 ARD TV가 취재 왔다. ARD 도쿄 지국장인 마리오 슈미트 기자는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많은 부스 비용을 치르고 서울에 출장왔다고 했다. 통역을 맡은 디르크 휜들링은 문학박사였다. 마리오 기자에게 이번 서울 취재의 목적을 물어보니, 주제가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인권’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테마가 분명한 취재였던 것이다.

마리오 기자의 질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보느냐, 거론하지 않을 거라면 그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현재 중국의 탈북자 상황은 어떠냐, 북송된 탈북자는 어떤 죄목에서 어떤 벌을 받느냐, 북한정권은 인권문제를 어떤 각도에서 다루고 있느냐, 그동안 국제사회의 관심이 북한인권 문제에 도움이 되었느냐, 도움이 되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개선이 있었느냐, 정치범수용소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구체적인 상황은 어떠냐…

그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사전 취재가 많이 되어 있었다. 정치범수용소 관련 책 중에 가장 최근 출판된 안명철의 ‘완전통제구역'(시대정신 간)을 먼저 달라고 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의 북한담당 기자들이 과연 이 책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ARD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어디에 들르고, 어떤’행사’를 할지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이야 전세계 어떤 정상회담이든 다 있지 않느냐는 태도였다. 옳은 말이었다. 과연 독일 제1의 공영방송다운 제작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문제는 가장 중요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실태를 비롯하여, 인권문제, 핵문제, 평화문제, 정치, 경제, 국제관계, 사회문화, 역사, 통일문제 등등 굵직굵직한 테마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테마들을 제대로 다루려고 작심만 한다면 2박 3일치는 충분히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방송사에는 모자라는 기자들만 모였기 때문에 ARD 같은 취재를 못하는가? 절대 아니다.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북한문제를 정직하게 정공법으로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한 내부의 정파적 관점에서 북한문제를 보려고 한다. 모든 문제의 화근이 이것이다.

남한의 방송사 기자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정파적 관점과,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현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기자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다루면 된다. 기자가 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남한 내부의 정파적 관점으로 보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리어 이 대목에서 묘한 ‘부화뇌동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수구보수로 몰린다’는, 누군가 뿌려놓은 거짓선동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기 무리들’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그렇게 부화뇌동하면서 눈치를 볼 바에야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장삿길로 나서는 게 낫다.

노 대통령이 거론해야 할 주제

이 대목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김정일의 눈치를 보면서, 김정일이 싫어할 화제는 꺼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태도가 마치 ‘민주적인 대화’라고 착각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반드시 거론해야 할 대화 주제는 이런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키고 있으니 북한도 실천해라.
-중국처럼 개혁개방하면 인민도 살고, 나라 살림도 펴진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 진짜 개혁개방해라.
-국군포로, 납북자, 납치자는 우리도 그렇고, 국제사회도 인정 안 해준다. 따라서 빨리 푸는 게 속 편하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정치범 수용소가 아직 있다는 것, 국제사회의 창피다. 빨리 없애라.
-남북간 교류는 적어도 편지, 전화, 고령자 왕래의 3통(通)은 해야 된다. 이를 같이 하자.

이상과 같은 대화가 비계를 뺀 실질적인 남북 대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 이것이 이번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담겨야 할 ‘살점’이다.

북한문제가 무슨 별세계 문제처럼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 사는 문제’다. 북한문제를 괜히 어렵게 말하는 사람은 아는 척 하려는 사람이거나, 실력 없는 짝퉁 전문가다. 자기 스스로도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오늘날의 여러가지 북한문제는 남한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만 잘하면 남북관계는 문제될 것이 없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 없는 NLL 문제 같은 것은 꺼내지 말고 자신있는 대화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노대통령이고, 언론이고 간에 쓸데없는 비계를 뺀 회담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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