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구걸하면 한반도 주도권 北에 헌납

정세현 前통일부장관은 27일 한 토론회에서 “남한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회복하는 방안은 정상회담뿐”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미국이 대북정책을 봉쇄에서 개입정책으로 바꾸고, 중국이 외교부장 방북을 추진하여 기존 대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데, “남한은 쌀지원 유보 조치로 대북영향력을 스스로 상실했다”고 현 정세를 진단했다. 이제라도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회복하자’는 처방도 내렸다.

안타깝게도 정씨의 처방으로는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남북관계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해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정상회담이 아쉬운 것은 노무현 정부와 여권이지, 김정일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담의 대가로 막대한 돈을 얻을 수 있다면 혹시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조급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게는 정상회담이 좀더 절실하고 급하다.

현 정부의 무상 대북지원 규모는 현재까지 1조2천400억원, 김대중 정부의 2배를 넘는다. 민족공조노선과 포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지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얻은 것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 상실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다.

대선은 눈 앞에 다가오는데, 여권 후보의 지지율은 한자리 숫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여권이 남북 정상회담만 성사된다면, 이런 정세를 일거에 뒤엎을 수 있다는 믿음과 미련을 떨쳐버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김정일이 무엇이 아쉬워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내주면서까지 회담장에 나오겠는가.

둘째, 정상회담 성사 방법이 김정일 정권에 대한 막대한 원조와 지원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아쉬울 것도 급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날은 곧 저무는데 갈 길은 먼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상반된 처지에서 노 정부가 김정일 정권을 정상회담 석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김정일을 찬양하면서 대대적인 원조와 지원을 약속하는 것뿐이다. 원조와 지원 규모도 전적으로 김정일의 선택에 달렸다. 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자세를 낮추고 김정일 정권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정상회담은 그 실현 가능성 자체가 낮은 편이다. 또 설사 성사된다고 해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주도권을 한국 정부가 갖게 될 가능성도 낮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주도권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김정일 정권에 더욱 심하게 끌려 다닐 것이다. 정상회담 후, 남한 정부는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될 수 있는 행동을 쉽게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질 것이고, 김정일 정권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남한과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어설프게 정상회담을 추진할 게 아니라, 실제 남북관계 주도권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보다 앞서 있는 경제력이나 미국, 일본, 중국 등 외교관계를 활용하여 주도권을 찾아 오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첫째,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그 어느 주변국 보다 원칙적이고 강경한 태도와 입장을 보여야 한다. 이는 북핵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 정부의 원칙이다. 둘째, 경제협력과 개혁개방을 연계해야 한다.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북한의 개혁개방을 강제하는 동력이 되도록 다시 설계해야 한다. 셋째, 김정일 정권의 존속을 전제로 한 평화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비현실적 대북정책을 대신할 새로운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는 불과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을 추진하여 차기 정부까지 어렵게 하지 말고 지금까지 벌여 놓은 일을 잘 매듭하는 데 역점을 둘 일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