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서 NLL 논의해도 ‘휴지조각’ 되는 이유

노무현과 김정일의 NLL 협의는 결국 구속력 없는 사담(私談)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인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9월 13일 국회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NLL(북방한계선)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예비역대령연합회’는 이번 노무현-김정일 회담에 수행하는 김장수 국방부장관에게 “NLL을 확고하게 지켜 ‘제2의 이완용’이 되지 말라”고 하여 김장관이 노발대발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NLL을 북측과 협의하는 것을 찬성하는 측이던 반대하는 측이던 이번 노-김 회담에서 “남북이 ‘NLL’에 대하여 협의한다”는 표현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북측과 NLL에 대하여 협의할 수 있다는 청와대의 입장이나 이를 영토주권의 침해로 규정하여 반대하는 측이나 ‘공허한 논란’을 벌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NLL 문제 확실히 알아야 할 5가지

이 문제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모두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첫째: 북한은 NLL을 “유령의 경계”라고 부르면서 전혀 인정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공식적으로 NLL에 대하여, 예를 들어 “경계선을 남쪽으로 변경하자”는 식의 제안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NLL의 현 상태를 변경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NLL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북한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강정구 교수가 한국전쟁을 김일성이 벌인 “통일전쟁”으로 표현하였을 때 북한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북한은 지금까지 남침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과 흡사하다.

둘째: 대한민국은 북한과 서해상에 남북의 영해를 구획 짓는 경계선에 대하여 합의할 수가 없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안보보좌관을 역임하였던 서주석이 “NLL이 국경선이라면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과 완전히 동일한 근거에서 출발한다. 즉 한국의 영토, 영해, 영공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이미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으므로 헌법 개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누구와도 영토문제를 확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셋째: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해상의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하여 협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에 대한민국은 서명을 하지 않았고, 정전협정의 변경은 협정 부칙 제5조 61항 “본 정전협정에 대한 증보와 수정은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들의 호상 합의를 거쳐야만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여기서 적대쌍방 사령관들이란 “국제련합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이다.

넷째: NLL은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 그 예하에 있던 한국군에게 내린 행동지침이므로 NLL의 변경은 유엔군사령관과의 협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만일 이번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남북한이 명칭이야 어떻게 부르던 NLL의 변경을 사실상 합의하고 추후에 유엔군사령관의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렬 경우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북한은 새로운 경계선을 어떻게 부르든 절대로 NLL의 변경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고, 한국 측은 그것을 ‘NLL의 변경’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남북한은 ‘공식적으로 서로 합의한 사실’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NLL을 유엔사와 협의 하에 조정한 것일 뿐이고, 이런 식으로라면 다음 정권에서 다시 유엔사와 협의 하에 NLL을 지금의 경계선으로 복귀시키거나 북상시키는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해야 하고 북한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섯째: 이제 남은 방법은 -남북기본합의서가 효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불가침 관련 부속합의서’ 제10조에 명시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부분을 원용하여 NLL의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조항의 문제점은 북한이 NLL을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리영희 교수나 이장희 교수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서해상에는 NLL 이외에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이 따로 있지도 않으므로, 북한 측이나 친북좌파의 주장에 의거하면 서해상에는 아예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조항에 의거하여 합의할 내용은 -북한과 친북좌파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확정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군사분계선이거나 영해를 확정하는 국경선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 두 경우 모두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확정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음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다.

권한 가진 유엔사가 NLL 변경 안할 것

위에서 살펴본 다섯 가지 이외에 NLL에 대한 또 다른 논의는 없으므로,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NLL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다는 문재인 비서실장의 주장은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이 ‘사견'(私見)을 교환한다는 수준 이상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따라서 다음 정권이 좌파정권이든 우파정권이든 관계없이 NLL에 대한 어떤 합의도 구속력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못질”을 하여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어음”은 NLL에 관한한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NLL의 상태 변경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위에서 밝힌 다섯가지 경우는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고 ‘한국 측에 유엔사와 협의 하에 NLL의 변경을 주도해 줄 것’을 요청하여, 한국이 유엔사와 협의 하에 변경하는 방법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듯이 NLL은 서해5도와 수도권 방위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북좌파에게는 이런 주장이 ‘수구’들의 억견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그것은 현재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김정일정권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의 궤변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엔사가 NLL의 변경을 ‘군사적 위험’을 무릅쓰고 한다면 그것은 군사적 성질만을 지닌 유엔사의 권한을 넘어서는 ‘정치적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국민의 대다수가 이러한 잘못된 정치적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므로 유엔사 역시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