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서 나타난 김정일 정책결정방식

2007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정책결정 시스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선적인 상명하달식이 아니라 하의상달식 요소도 나름대로 갖추고 있음이 재확인됐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은 오전에 노 대통령으로부터 입장을 들은 뒤 점심에 참모들의 의견을 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오후 회담에는 북측 참모들의 의견이 바탕이 돼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게 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소개했다.

또 정상회담의 한 수행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해주지역 경제특구 건설을 제안하자 처음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배석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 해주항을 열어도 괜찮은지 국방위원회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지시했다.

이어 국방위원회의 한 장성이 “충분히 검토한 결과 괜찮다”는 보고를 받은 뒤 김 위원장이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상회담 때 즉석에서 수시간 만의 검토로 수용 결정이 됐다기보다는 북측이 회담준비 과정에서 남측의 제안에 대비해 사전에 관련 검토를 충분히 거쳤을 것이지만,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최종 확답을 주기 전에 다시 한번 관련기관의 의견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단독회담 때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함께 불러들여 북핵 10.3공동성명의 합의 경과를 보고토록 했다.

이런 사례들은 북한의 모든 정책이 김 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최종 결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김 위원장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과정에서는 관련 부처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북간 경제협력 문제가 광범위하게 논의된 이번 회담에 김영일 총리를 비롯해 내각의 주요 경제부처 수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북한의 정책결정 시스템이 나름대로 하의상달식의 합리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위층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가장 보편적인 정책결정 과정은 당.군.정 각 분야에서 정책 초안을 작성해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집행하는 방식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여러 부처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남측의 ‘관계부처 조정회의’와 같이 부처간 협의를 한 뒤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해 아래에서의 합의를 중시하고 있다.

유관 부처 사이의 합의를 거치지 않거나 의견조율이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아예 보고할 수 없도록 하고, 보고서의 끝 부분에 반드시 ‘000(기관명)과 합의했습니다”는 문구를 명기토록 하는 등 정책 작성단계에서 엄격한 합의질서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성격을 띠거나 장기성을 띤 사안의 경우 관계기관 실무자들로 상무조(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북한의 정책결정 시스템이 단선적인 지시형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의견수렴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했던 상무조를 비롯해 ‘핵 상무조’, ‘6자회담 상무조’, ‘인권 상무조’, ‘조(북)일 상무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상무조 방식 외에 ‘큰물피해대책위원회’와 같이 관련 부처의 책임간부들로 비상설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기적인 회의 소집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정책결정 방식과 과정은 물론 김 위원장의 의도와 체제고수라는 최종 정책목표와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연성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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