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선언 ‘是是非非’ 이렇게 가려보자

10월 2-4일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생산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협력을 위한 선언’을 놓고 진행되고 있는 후속 논의는 예상되었던 문제점들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우선, 찬반론의 초점에 문제가 있다. 선언은 한 마디로 대단히 불균형적인 것으로 상호성이 무시된 내용이다. ‘대북 경협을 위한 막대한 납세부담,’ ‘서해북방한계선(NLL)의 유명무실화 가능성,’ ‘6·15 공동선언의 재천명으로 인한 남남 갈등 소지’ 등 많은 ‘뜨거운 감자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측이 삼켜야 할 뜨거운 감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갈망했던 북한의 핵해결 의지 표명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귀환 문제는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핵포기 선언’ 같은 특별선물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남측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민족화해,’ ‘군사긴장 해소,’ ‘평화체제,’ ‘경제공동체’ 등 다분히 이상론적인 목표들인데, 그나마 이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인 변화라도 수용해야 가능하다. 북한이 체제단속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한 사실상 ‘신기루’에 가깝다.

언제 어떻게 달성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막연한 미래의 보상들을 당장 짊어져야 할 현실적인 부담과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두고 합리적인 분석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언의 불균형성-비상호성 설명해야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선언이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놓고 찬반론을 벌이는 것은 그 자체가 사실의 왜곡이 된다. 선언에 찬성하는 사람들이라면 불균형을 인정하되 감수해도 좋을 이유들을 설명하고 대국민 설득을 시도하는 것이 옳다. 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야 하는지, 또는 연거푸 태풍피해를 입은 제주도보다 북한에 돈을 보내는 것이 더 급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선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큰 현실에서 그리고 북한을 설득하여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입장에서 무조건적 균형이나 완벽한 상호성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보다는 불균형성이나 비상호성이 왜 지나친가를 설명해야 하며, 그것이 가져올 현재와 미래의 위험과 손실을 체계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둘째, 찬반론과 관련한 역할분담에 문제가 있다. 정상회담이 끝나면서 우려했던 대로 익히 예상했던 사람들이 예상했던 익히 찬반론을 쏟아내고 있다. 회담을 추진했던 실세들이나 이들을 지지하는 소위 ‘개혁세력’은 ‘한민족 화해협력을 위한 새 전기’, ‘향후 10년간 남북관계를 끌고 갈 이정표’ 등 당연한 찬사를 내놓고 있으며, 방송들이 날선 비판론을 회피하고 원론 차원의 찬성론을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도 익히 예상했던 바다.

야당에 속한 사람들이나 소위 ‘보수세력’의 비판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의식한 정치행사,’ ‘납세자 동의없는 막대한 대북지원 약속’ 등을 단골메뉴로 입에 올리는 것도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고, 야당이 행여나 ‘수구골통’으로 몰려 대선에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하여 강도조절에 조바심을 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가 하면 국책연구원에 속한 전문가들은 비판하고자 하는 논리가 있어도 ‘벙어리 냉가슴’으로 지켜보아야 할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후진국적인 현상이 우리에게는 여전이 ‘남의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는 것은 세칭 ‘극우’로 분류된 시민단체나 인사들뿐인데다가, 이들이 주장을 확산시키는 주된 방법은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이 고작이다.

전문가, NLL 연관 합의 비판 지극히 절제

이런 구조하의 논의는 심도 있는 비판론을 국민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책임있는 지식인라면 직접 나서야 한다. ‘극우’로 낙인찍힌 사람들, 그래서 보통 국민이 외면하기 십상인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기대’와 ‘환영’을 표시하는 목소리들을 주로 전달하면서 설득력이 부족한 일반인들의 ‘온건한 비판론’을 적당히 끼워 넣어 구색을 갖추는 식의 행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 보다는 이번 선언의 내용이 불균형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되 그럴 수밖에 없음을 심도있게 주장할 수 있는 찬성론자들을 등장시켜 강도 높은 비판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선언이 남북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성격의 문건이라면, 그것이 지금 한국의 방송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국민으로부터 시청료를 강제 징수하는 국영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NLL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국방장관이 어렵사리 흘리는 ‘알듯말듯한 소신’이나,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전문가들의 ‘지극히 절제된’ 비판론만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정곡을 찌르는 비판론을 국민에게 소개해야 한다.

NLL은 주권의 상징이자 국가의 생명선이다. 세계 어떤 나라가 이를 지키는데 소홀히 하고 있는가. 1970-80년대 중국과 소련은 만주 우수리강의 조그마한 섬을 놓고 수천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기까지 유혈분쟁을 벌였다. 손바닥만한 섬의 경제적 가치가 대단해서였겠는가. 주권을 소홀히 하는 것은 후세에 누를 끼치는 일이자, 더 큰 손실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해 NLL은 한국에게 있어 막중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다. NLL이 무력화되면 이미 북한군의 야포화력에 노출된 상태에 있는 수도서울의 옆구리마저 취약하게 된다.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도 취약하게 된다. 국가 경계선은 한번 무너지면 되찾기 어렵다.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가는 정권이 마음대로 허물어도 되는 그런 선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양식있는 지식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도 왜 이런 주장이 ‘극우의 전유물’로 버림받아야 하는가.

국민이 평가하는 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

선언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이런 점을 직시하면서 당당하게 찬성론을 펴야 한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같은 사람들이 진정 NLL을 허물기를 원한다면 NLL 붕괴 이후 한국이 직면할 수 있는 위험과 후세가 입어야 할 피해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이익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즉, 역사와 후세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의 보상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는 국민의 동의를 기다려야 한다. 왜곡된 토론구조 하에서 ‘NLL 수호’를 ‘극우’의 주장으로 격하시켜놓고 선문답을 하면서 국민의 여론을 떠보는 식의 흘리기는 그만두어야 한다. 북한에게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NLL 재설정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을 조건으로 요구했다면 그대로 밝히고 대수 국민의 뜻을 물어보아야 한다.

핵문제도 다르지 않다. “북한이 핵불능화를 이행하겠다고 하니 핵문제는 잘 풀리고 있다”라고 덮고 지나가려는 것은 초점을 흐리는 찬성론이 된다. 대북 경제협력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다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핵문제 역시 제대로 풀지 못하면 후세에 큰 짐을 남기는 것이 되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불능화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지정한 세 개의 핵시설, 그러니까 5 MW 원자로, 재처리 시설, 그리고 핵연료봉제조공장만에서 핵심부품들을 제거하여 가동이 어렵도록 만드는 조치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그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불능화 이행 이후에도 기존의 핵무기를 가지게 되며, 플루토늄이나 농축활동을 규명하는 문제도 그대로 과제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핵불능화란 비핵이라는 메인게임에 앞선 오픈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되,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의 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 정도다. 현재 많은 국민이 핵불능화가 되면 북한의 비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정부, 방송, 언론 모두는 상당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이번 선언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핵불능화 이행의지를 재확인한 것을 두고 ‘핵문제 해결’로 왜곡·과장하기보다는 “북한은 핵폐기의 조건으로 체제와 정권의 완벽한 보장을 주장해왔고, 미국만이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남한이 아닌 미국을 협상상대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약속을 내놓기는 어려웠다”는 점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것이 “핵문제를 거론하라는 것은 나보고 북한가서 싸우라는 것”이라는 발언보다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설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핵해결을 주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해온 정부로서는 다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책임있는 지식인들이 나서면 된다. 소위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이런 저런 혜택을 누려온 식자들이라면 그 정도의 역할은 수행해야 할 것이 아닌가. 반대론자들도 이런 내막을 직시해야 한다. 무작정 “왜 핵포기 약속을 받아오지 못했느냐”라고 윽박지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렇듯 논자들과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나머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여야가 “대선을 앞둔 시점에 무리수를 둔 대통령인가, 아니면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한 대통령인가”를 놓고 공방을 벌일 필요도 없다. 국민이 판단할 것이며, 극민이 판단하는 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정치학 박사·대한민국방송지킴이국민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