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선언’이 北인권 발목 잡았다

우리 정부는 20일(현지시각) 제62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유럽연합과 일본이 공동 제안한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표결에 ‘기권’했다. 이러한 결정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남북한 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기권키로 했다”고 했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 핵실험 이후 열렸던 지난해 유엔총회에서는 이 결의안에 사상 처음으로 ‘찬성’ 표결을 한 바 있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최근 북핵 6자회담을 통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이 진행 중이고,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등을 통해 남북관계도 순항 중에 있는 상황에서 결의안에 찬성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문제를 또 다시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결의안은 고문과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 송환과 처벌 등의 인권 침해 사례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유엔 기구와 비정부단체들의 북한 내 활동 허용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유아 살해나 외국인 납치자 관련 내용 일부가 완화되거나 삭제돼 지난해에 비해 수위는 더 낮아졌다.

정부가 기권 이유로 밝힌 남북관계라는 것이 한 번도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해 결의안 찬성 이후 일부에선 ‘남북관계가 더욱더 경색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또한 북한 내 인권 상황은 전혀 개선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어떤 식으로도 해명되지 않는다.

지난해 결의안에 찬성한 직후 정부는 “한국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공감하며 이번 결의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건설적 방식으로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정부의 결의안 찬성은 북핵 실험 등으로 악화된 국내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꼼수’였음을 자인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이번 결의안 기권은 지난 ‘2007남북정상선언’에서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이후 나온 것이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와 국정원 등은 정부가 결의안에 찬성할 경우 북측이 ‘내부문제 불간섭 원칙’이 깨졌다고 주장하며 27~29일에 열릴 국방장관회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선언 실무작업을 주도한 김만복 국정원장은 지난달 국정브리핑에서 이 조항에 대해 북한 인권 및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불거론 약속 등으로 왜곡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대북인권결의안과 관련된 정부 내 논의는 그동안의 우려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써 ‘내부문제 불간섭 원칙’을 초월한다는 게 최근 국제사회의 조류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부 부처가 이를 근거로 ‘기권’을 주장한 것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의 지위를 망각한 행동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가 증진되고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여 국이 참여하는 인권결의안에 조차 북한의 눈치를 보면 마음대로 표결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 대북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관계 특수성’이라는 궁색한 변명이 언제까지나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 속에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했다. 때문에 유엔 인권위 이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들의 ‘인권’에 등을 돌린 것은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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