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권 유착과 폭력-사기의 ‘행복한’ 만남

전・의경 부모와 예비역들이 폭력시위 추방을 요구하며 7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폭력시위 근절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폭력시위는 추방돼야 한다. 따라서 전・의경 부모들의 폭력시위 반대시위는 옳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폭력시위에 무감각해져 왔다. 80년대 민주화 시위 이후부터다. 민주화 시위는 우리사회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러나 폭력시위 무감각 현상도 함께 가져왔다. 홍콩으로 간 시위원정대도 마찬가지였다. 무감각 때문에 한국산 폭력시위는 국제적으로 망신당했다.

80년대에 최루탄이 먼저냐, 쇠파이프가 먼저냐는 논란이 있었다. 무탄무석(無彈無石)-무석무탄 시비도 있었다. 경찰의 정당한 진압은 옳다. 그러나 과잉진압은 안된다. 마찬가지로 준법시위는 옳다. 그러나 폭력시위는 안된다. 따라서 시위대가 폭력시위로 돌변할 수 있는 기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평균주의의 결과는 ‘무질서’

전・의경 부모들의 ‘폭력시위 반대시위’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4.19 직후는 허구헌날 데모였다. 오죽하면 데모를 그만하자는 데모까지 있었겠는가. 전・의경 부모들의 시위도, 말하자면 폭력데모를 하지말자는 데모다.

제2공화국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카리스마의 공백상태에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기로 보는 것이 정확할 듯싶다. 이후 수십년 간 권위주의 시대와 경제성장이 동시에 지속됐다. 민주주의는 경제성장, 정치제도 합리화, 국민들의 사회의식 수준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제도적, 질적으로 발전해간다. 사회역사 발전에 ‘공짜’란 없는 것이다.

87년 6.10 항쟁 이후 우리사회는 제도적인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질적 측면에서는 아직도 멀었다. 87년 이후 우리사회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하나의 축과,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축이 마치 DNA 염기배열처럼 나선형으로 맞물리면서 변화가 진행돼 왔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어디에 목적지를 두고 나아가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우리사회가 자유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해 가고 있는지, 막연한 평균주의를 민주주의 발전으로 착각하고 퇴행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민주적 질서를 지키자는 것이다. 기회에서의 균등과 결과에서의 차이는 하나의 중요한 질서다. 평균주의는 이 질서를 무시한다. 평균주의가 몰고 올 결과는 결국 무질서다.

민주주의 질서 스스로 무너뜨려

이번 노정부의 개각을 둘러싼 행태를 보면 심각한 무질서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기회에서의 균등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장관은 그 사회 구성원 중 해당 분야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 전 국민을 상대로 인재를 고르는 기회균등 원칙에서 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려막기,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개인 노무현’의 사적 이해관계 챙기기가 횡행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무슨 대단한 전략가라도 되는 양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통일 전 분야를 완전히 주무르게 됐다. 장관을 물색하면서 해당 분야에서 30년, 40년이 넘게 실력을 쌓은 베테랑들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둘러댄다.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무슨 ‘철학’이 있는가?

장관 자리를 지방선거에 내보내기 위한 정치적 ‘몸집 불리기용’이라고 대통령 스스로가 말한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발전은 아예 관심 밖이고 오로지 정권사수에 혈안이 되었다. 이것이 도대체 한 국가의 ‘정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녹림당’(綠林黨)들이 아닌가. 말이 좋아 ‘녹림당’이지, 국민들의 눈에는 문자 그대로 권력 도적 패거리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니 ‘×나 ×나 다 장관 한다’는 말이 안 나올 도리가 있는가.

자유민주적 질서는 한 사회의 치안문제 뿐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 분야에 적용돼야 할 원칙이고 철학이다. 이 질서가 노무현 정권에 들어와 무너지고 있다. 이제 겨우 제도적 민주주의에서 질적 민주주의 발전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스스로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남 따로, 북 따로 아닌 ‘한반도 시야’ 가져야

노정권은 소위 ‘진보’라는 허상전략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겼다. 이후 대북정책을 비롯해서 각종 ‘퇴보’정책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각색해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이제 유권자들은 안다. 진보-보수의 구도가 위장되었고, 사실은 수구좌파들에 의한 ‘무능’이라는 본질을 깨닫고 있다. 이같은 국민들의 각성은 다음 대선에서 유능과 무능에 대한 심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는 사기와 폭력이 들어선다. 이는 어느 사회든 필연적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미국에서조차 카트리나 사고를 통해 숨어있던 폭력과 무질서의 몸뚱아리를 내보였다. 따라서 무능정권으로 이미 판명된 노정권은 향후 ‘사기 전술’로 대선 때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그 하나가 대북정책이다.

올해 노정권은 남북정상회담, 우리끼리 연방제 제의 등 정권 재창출을 목적으로 각종 대북정책에 올인 승부를 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자주통일, 반전평화, 민족대단합이라는 ‘김정일판 사기전략’을 내걸었다. 김정일 수령독재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기극이다. 사기에 관한 한 지구 최고수와 정권 재창출을 목적으로 한 아마추어 사기가 만나면 누가 이길지 결과를 보지 않아도 답은 나온다.

김정일 정권은 이같은 정세 하에서 이른바 ‘보수대연합 분쇄’를 내걸고 남한내 친북맹동단체들에게 폭력시위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로서는 규모가 크든 작든, 무질서 야기 자체만으로도 남한사회 흔들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일은 남한 내의 폭력사태와 한반도에 일정수준의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면, 이어지는 남북 정권간의 대화와 지속적인 남북교류(대북지원)가 ‘한반도 평화유지에 얼마나 소중한가’를 효과적으로 연출해낼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서해교전과 남북정상회담 및 5억달러 지원, 핵실험 징후와 정동영-김정일 만남,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쌀 비료 생필품 지원…

DJ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극적인 남북대화 뒤에는 북한의 ‘폭력’과 남한국민들의 세금을 담보로 한 ‘평화유지 비용’ 및 정권의 친북유착이 있어왔다. 결국 그 본질은 폭력과 사기인 것이다.

올해도 이러한 그림들이 조각 맞추기처럼 차례로 진행될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이 할일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올해 한반도에서 전개될 사기와 폭력, 남북정권 간의 유착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면서 이를 분쇄하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더이상 南따로, 北따로 정세분석을 해서는 곤란하다. ‘한반도 정세’를 하나의 시야에 넣어야 한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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