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학의 신새벽을 열어 젖히는 남.북 문인들의 함성이 백두산 천지 위로 메아리쳤다.
23일 오전 5시, 백두산 장군봉 아래 개활지에 남과 북, 해외문인 등 150여 명이 모였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회의’(이하 남북작가대회)의 나흘째 행사인 ’통일문학의 새벽’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북쪽 시인 리호근 씨와 남쪽 소설가 은희경 씨 공동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남쪽에서 고은, 신경림, 백낙청, 황석영 씨 등 100여 명, 북쪽에서 홍석중, 오영재, 남대현, 김병훈 씨 등 20여 명과 미국 동포작가 이언호 씨와 일본의 김학렬, 김정수 씨 등이 참가했다.
행사는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과 장해명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이 지난 2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본대회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고은 시인이 지난밤 백두산 삼지연 베개봉 호텔에서 쓴 시 ’다시 백두산에서’를 낭독했다.
“해 뜬다/이 삼천리강산 모든 풀잎들 꽃잎 이슬들/아침햇발 한 살 한 살에 눈 뜬다/불싸리꽃 금취꽃/우정금꽃 기뻐라// 1백년 전 하나였던 것 150년 전 하나였던 것/아니 3백년 전/어느 먹밤 터무니에도/오로지 하나였던 것// 1백년 후/어찌 하나 아니겠느냐는 것//ㆍㆍㆍ” 고 시인 특유의 열정적인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참가자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동터오는 해를 응시했다.
“몇해 만인가/다시 백두산 정수리 새벽에 올라/몇해 만인가 속 깊이 우짖어/남김 없이/내 빈 발걸음 터벅터벅 내려간다/내려가/삼지연 백두영봉 그림자를 오롯이 맞이한다/아니 둘이 아닌/하나의 삶 그것을 낳고야 말/햇빛 부신 하루를 맞이한다// 저 바닥 가득히 해 진다.
” 낭송에 이어 소설 ’황진이’의 북쪽작가 홍석중 씨가 마이크 앞에 섰다. 홍씨는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하늘을 이긴다. 우리는 6.15공동선언으로 모아졌다. 조국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백두산에 올라 조국통일 만세라는 말을 다시 외칠 것이다”라고 통일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다음 차례는 미국에서 온 동포문인 이언호 씨. 그는 “백두산이여, 그리고 형제들이여, 제가 얼마나 여러분을 그리워했는지 알고 계십니까”라며 “우리 이제 한라산으로 가야 합니다. 한라산과 삼천리 강산을 울려야 합니다. 백두산이여, 한라산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맺었다.
이어서 북쪽 시인 박세옥 씨와 남쪽 소설가 송기숙 씨, 일본에서 온 동포평론가 김학렬 씨, 그리고 북쪽의 젊은 여성시인 박경심 씨와 남쪽 시인 안도현 씨, 북쪽 소설가 남대현 씨와 남쪽 소설가 현기영 씨가 나와 각자의 시를 읽거나 소감을 밝혔다.
남대현 씨는 “지맥은 하나지만 혈맥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때와 장소를 골랐다. 이제 우리 마음 하나로 합치는 것만 남았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면 겨레가 하나로 뭉친다”고 강조했다.
소설 ’빨치산의 딸’ 작가 정지아 씨가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조국은 하나다’를 낭독한 다음에는 북쪽 시인 오영재 씨가 나와 자신의 시 ’잡은 손 더 굳게 잡읍시다’를 낭송했다.
“열다섯살에 다도해 기슭을 떠나/평양에서 일흔이 된 이 몸/그대들의 손을 잡으며/통일을 애타게 부르며 부르며 떠난/수천수만의 피 더운 손도 함께 잡은 듯/조종의 산 백두산에 맹세하며/잡은 손입니다/더 굳게 잡읍시다/온 민족이 이렇게 손 잡고 갑시다”(’잡은 손 더 굳게 잡읍시다’에서) 조선작가동맹 김병훈 위원장의 연설로 행사를 마감한 참가자들은 “백두산 만세” “민족문학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며 산회했다.
한편 이번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자인 남쪽의 이기형(89) 시인은 월북 시인 오영재 씨와 부둥켜 안고는 눈물바다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천지에 도착하면서부터 울음을 보인 이씨는 오씨를 만나자 “어머니를 북에 두고 내려온 나와 어머니를 남에 두고 올라온 당신은 같은 처지”라며 끌어안았고, 이에 오씨 역시 눈물로 답했다.
평양 본대회에 이어 백두산 행사를 마친 남북작가대회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묘향산으로 장소를 옮겨 ’민족문학의 밤’ 행사를 치른 뒤 이튿날 평양에서 폐막 연회를 열었다. 남쪽 대표단은 25일 오후 고려항공 전세기 편으로 인천에 돌아온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