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함께 찾는 북관대첩비

정부가 12일 ’북관대첩비 당국회담’을 북한에 제의함에 따라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승전비로 1905년 일본이 강탈,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방치돼 있는 조선시대 문화재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 장군은 의병을 규합해 함경북도 경성과 길주에서 왜군을 격퇴했는데 1707년(숙종 33년) 함경도 북평사인 최창대(崔昌大)가 이를 기려 길주군 임명(臨溟, 현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세웠다.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의 이 대첩비에는 함경도 의병이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를 무찌른 과정,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반역자 국경인(鞠敬仁)을 처형한 전모 등이 1천500자 비문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200년 가까이 함경도를 지키던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ㆍ일 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면서 기구한 운명에 처해졌다.

일본군 제2예비사단의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 소장이 주민들을 협박, 대첩비를 파내 일본으로 강탈해 간 뒤 군국주의의 상징인 도쿄(東京) 야스쿠니신사 구석에 방치한 것이다.

이 사실은 1978년 도쿄의 최서면 한국연구원장이 밝혀냈고 임진왜란 전승기념비가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차례 반환 요구가 이어졌다.

정문부 장군의 후손인 해주 정씨 문중이 1978년 한ㆍ일친선협회를 통해 반환을 요구했으며 이듬해 외무부에서 일본 정부에 반환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 밖에 한국호국정신선양회(1991), 한ㆍ일의원연맹합동총회의(1993), 북관대첩비환수추진위원회(1993), 한ㆍ일문화재교류위원회(1999) 등이 똑같은 요구를 했다.

그 때마다 일본 정부는 ’대첩비의 원소재지가 북한이고 민간종교법인의 보유물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곤란하다’는 핑계를 댔고 신사측은 ’남북이 하나일 때 가져왔으니 남북이 통일되면 돌려주겠다’는 어불성설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북측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가 남측 불교단체에 팩스를 보내오면서 대첩비 반환을 위한 남북공조가 급물살을 탔다.

불교도연맹은 당시 “최근 남쪽 불교계가 한일불교복지협회 회장인 초산 스님을 중심으로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며 “한일불교복지협회와 연계를 취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3월 28일에는 북관대첩비 민족운동중앙회 남측 대표인 한일불교복지협의회장 초산 스님과 북측 대표인 조선불교도연맹 심상진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북관대첩비 반환ㆍ복원에 합의하고 합의문도 채택했다.

이러한 남북 불교계의 노력에 호응, 12일 통일부가 북관대첩비를 돌려받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당국 간 회담을 북측에 제의한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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