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화를 향한 적극적인 조치’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고 비난하고 있어 반응을 낙관할 수는 없지만, 대남 전략 차원에서 우리 측 회담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북한이 우리 측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이유일까? 북한이 지금까지 내놓은 반응을 보면 우리 측 베를린구상에 호응하는 차원은 아닐 것 같다. 북한이 지난 15일 노동신문을 통해 내놓은 반응을 보면, 북한은 문 대통령의 ‘대화와 제재 병행’ 정책이나 북핵 폐기 요구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대화 나온다면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온다면 나름대로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현실적인 이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군사당국회담이 열리면 확성기 문제가 거론될 텐데, 확성기 방송은 북측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이다. 회담을 통해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수확이다. 회담장에 나오는 수고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좀 더 장기적 차원의 전략으로 보면, 지금 시점에서 남북대화에 응하는 것이 대북제재를 이완시키고 한미갈등을 부추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 미사일을 쏘아댈 가능성이 높은데, 남북대화를 병행하면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계속 쏘게 되면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 회담을 진행하는 한국 정부 사이에 갈등 요소가 생겨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추석 전후로 합의해주고 상봉 직전쯤 핵실험 같은 도발을 하게 되면, 상봉을 일정대로 추진해야 하는 우리 정부와 대북 압박에 나서는 국제사회와의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남북, 서로 노림수 가지고 전략적 접근
우리 정부도 북한의 이 같은 노림수를 짐작하고는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저의를 감안하고라도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따지면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진전의 모멘텀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국면은 남북이 서로의 노림수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수를 놓는 과정에서 일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남북관계가 워낙 바닥이어서 뒤로 후퇴할 부분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핵문제의 벽 넘을 수 있을까?
남북의 밀고당기기 속에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아마도 남북관계가 핵문제를 놓고 더 이상 우회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일 것이다. 기초적인 접촉이나 인적교류 등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남북이 본격적인 협력이라는 한 단계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결국 핵문제라는 ‘진실의 순간’을 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 순간이 오기 전에 핵문제의 돌파구까지 마련할 수 있을까? 남북이 동상이몽 속에 관계진전을 꾀할 수 있는 여지가 사실 그리 넓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