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여성교류 어떻게 진행됐나

지난 1991-1993년 서울과 평양, 일본 도쿄에서 남측, 북측, 일본 여성이 네 차례에 걸쳐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남북 여성 교류의 물꼬를 텄다.

‘6ㆍ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 여성본부’에 따르면, 이후 토론회가 중단됐지만 남측, 북측, 일본 여성 등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지속적인 모임을 가졌다.

‘일본의 전후처리문제에 관한 평양 여성토론회'(1993), ‘종군위안부 문제와 여성의 존엄’을 주제로 한 남북일 3자 회합(1998), 도쿄 국제전범 여성법정(2000),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평양 토론회(2002)가 열렸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이 참가한 ‘제1차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가 개최됐고,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제2차 협의회로 이어졌다.

인도적 지원활동도 있었다.

1997년 분유 26t이 조선민주여성동맹과 조선여성협회측에 전달됐고, 2004년 ‘룡천역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여성단체들이 캠페인을 전개해 학교기자재를 지원했다.

2001년부터는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에 여성위원회가 구성돼 남북 여성 교류가 본격 추진됐다.

다음해 분단 이후 최초로 남측, 북측, 해외여성이 참가한 가운데 ‘남북여성통일대회’가 금강산에서 열렸고, 여러 차례 실무접촉을 통해 이번에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를 개최하게 됐다.

‘6ㆍ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 여성본부’는 55개 여성단체가 모여 지난 1월 발족했다. /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