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에 관한 일본 전문가의 투명한 인식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른바 ‘남북문제’에 관심을 갖고 남북관계를 관찰하기 시작할 때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인식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 단계, 남북문제를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상호작용관계로 파악한다. 특히 정치군사적 상호작용관계에 주된 관심을 갖게 되고, 여기에 덧붙여 경제적 상호관계가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또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가능하면 희망적 기대를 갖고 남북 간의 상호작용관계를 살펴보게 된다.

이 첫 단계에서 남북문제를 보는 관찰자의 인식에는 자연스럽게 ‘민족’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게 된다. 통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반작용으로 외세의 개입에 대한 반감까지 가지게 된다.

남북문제를 둘러싼 이분법적 사고

이와 같은 인식 자체가 나쁠 게 없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첫 단계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체제와 사상이라는, 우리의 삶의 전반을 규제하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부분보다 ‘민족’ 또는 ‘민족주의’라는 다분히 ‘정서’나 ‘감정’을 코드로 한 사고가 우위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민족’과 ‘외세’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진행되게 되고, 결국 ‘민족’은 선, ‘외세’는 악이 된다. 즉, 남북문제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결국 우리가 북한을 바라볼 때 가장 기초적인 관점, 즉 김정일 정권과 2,200만 북한 인민들을 갈라놓고 사고하는 합리적 관점을 갖지 못하고 그저 ‘남한 대 북한’으로 뭉뚱그려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이 사상 유례 없는 독재자라는 사실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이다. 따라서 통일로 가는 길에서 우선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김정일 체제의 전환, 즉 선(先) 북한의 민주화이다.

‘민족은 선, 외세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근원에는 남북문제를 남과 북의 상호관계로만 파악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그 다음 남북문제가 국제문제라는 사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즉, 남북과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모두 남북문제에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동북아 각 국, 멀게는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상호관계 속에서 남북문제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남북문제에 대한 두 번째 인식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로 얽힌 남북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두려운 전략가 김정일』(다락원 간)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국제관계의 틀에서 본 남북관계

이 책 『두려운 전략가 김정일』이 일반 독자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남북관계가 국제관계라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는 일본의 방위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오랫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다뤄온 동북아 전문가이다.

일본의 방위연구소는 경향성으로 보면 우파계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좌우 문제를 떠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김정일이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민족문제’를 활용하고 있고, 국민의 정부 이후 남한 국민들 사이에 조성된 ‘민족’이라는 키워드가 남한 및 동북아 안보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내고 있어 저자의 이념적 성향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6.15 정상회담 전후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사건별로는 햇볕정책 출범, 금강산 관광사업, 6.15 정상회담, 클린턴 시절 미-북간 대화, 부시 행정부 출범, 남북대화 교착 등을 다루고 있으며, 9.11 테러 사건 이전까지 대략 3년간의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에 대해, 그리고 그 변화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위험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2001년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미국 부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3월에는 한국과의 회담(장관급회담)을 연기했고 5월에는 스웨덴 총리를 단장으로 한 EU 대표단을 평양으로 불러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김정일은 EU 대표단을 매우 융숭히 대접했다. 또 대포동 미사일 실험발사를 2003년까지 연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사일 발사연기는 한미일 3개 국의 환영을 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북한으로부터 동북아 안정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외교적 성과를 EU 대표단에게 안겨준 셈이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북한은 유럽을 소중히 한다는 점을 과시함으로써, 한미일 특히 미국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기 직전인 4월 중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주한미군철수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럽과 관계개선은 그 이후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유럽과의 협상은 우회전술 외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화려한 유럽외교 배경에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럽은 물론 한국, 미국, 일본과 동시에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EU에 대한 접근에는 북한의 전략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지적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외교 다변화는 곧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등식을 가지고 판단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사안들을 핵심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그 중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은 한국인들이 ‘자주’, ‘민족’이라는 단어에 빠져있는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되는, 그리하여 나중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라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 9.11 테러 직전까지의 기간동안 한반도 정세를 분석한 것이다. 따라서 9.11 이후 달라진 안보환경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지나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 한반도 전문가로서 객관적인 국제관계 속에서 남북문제의 큰 줄기를 파악하고 있고, 특히 김정일의 기본전략을 분석하는 부분에서는 얻을 게 많다. 소형 책자이고 부피도 얇은 만큼 두세 시간 투자하면 좀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The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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