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성명 1주년> 남북관계, 6자회담 물꼬 틀까

작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이 탄생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우리 정부의 역할이었다.

제4차 6자회담이 작년 7월 말 재개되고 총 20일에 걸친 `끝장토론’을 통해 공동성명을 낳기까지 고비 고비마다 한국의 노력이 주도적, 창의적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벌인 우리의 외교적 노력도 주효했다. 하지만 우리 역할의 백미는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창의적인 기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간 소통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실마리를 풀게 하고 북미 간접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이고 협상이 벽에 부딪힐 때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한 것이다.

우선 6자회담 재개의 시발점이 장기 공백 끝에 작년 5월 16일 열린 남북 차관급회담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당시 우리 정부는 6.15 당국 대표단의 북한 파견을 제의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면 핵문제 해결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중대제안’을 마련하겠다는 제의를 던졌고 이를 바탕으로 6.17 면담에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사인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중대제안은 부시 미 행정부가 반대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는 대신 우리 정부가 휴전선을 관통하는 송전선로를 깔아 직접 200만kW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

정부는 이 중대제안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단에 핵심 유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흐름은 7월 9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베이징(北京)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로 이어졌다.

남북관계는 협상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우리 정부가 13개월 만에 열린 6자회담 참석차 베이징에 도착해 공개적으로 가진 첫 양자협의도 7월 24일의 남북접촉이었다는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남북 간 만남에 이어 한미 및 북미 양자 회동이 꼬리를 물면서 우리 정부가 대화의 촉매 내지는 고리 역할을 한 것이다.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이례적인 남.북.미 3자 접촉이 성사되기도 했다.

9.19 공동성명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진전을 동시에 추구한 정부의 병행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작년 11월 5차 6자회담 때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를 놓고 조성된 북미 간 갈등 국면으로 6자회담은 사실상 대화의 모멘텀을 잃어갔고 북한이 지난 7월에는 미사일까지 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남북관계를 활용한 정부의 역할은 올 들어서도 계속됐다.

예컨대 연초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추진한 방북 구상과 5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많은 양보를 시사하며 물질적.제도적 지원을 언급한 것은 북미 대치로 막힌 한반도 정세를 뚫어보려는 정부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은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하는 게 여의치 않다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핵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견인론’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9.19 공동성명 4항이 규정한 평화체제 문제를 풀기 위해 3월 초에는 제3차 장성급회담을 열기도 했지만 해상 북방한계선(NLL)의 파고를 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5월부터 포착된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은 DJ가 방북을 무기 연기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실제 미사일이 발사되면서 몽골 발언도 희석되기 시작했다.
예고된 일이긴 했지만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정부는 사전에 북측에 경고한 대로 미사일 문제 해결의 출구가 보일 때까지 대북 쌀 차관 50만t과 비료 10만t 제공을 유보했고 북측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7월 13일 조기 결렬된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을 끝으로 당국 대화가 올스톱된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를 활용한 정부의 노력은 수면 밑으로 내려가 있는 상태다.

7월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할퀴고 지나간 수마로 인해 정부는 8월 말부터 대북 수해복구 지원에 나섰지만 북측으로부터 대화에 나서겠다는 답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 내부적으로는 분주하지만 아직 꺼내 놓을 만한 카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까지는 우리 정부가 먼저 대화 제의를 할 낌새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각에서는 쌀 차관을 묶어놓은 만큼 우리가 새로 쓸 수 있는 대북 지렛대가 소진된 것으로 보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는 결국 지금은 남북관계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런 해석의 배경에는 우리 정부가 쌀 차관의 논의 재개 시기를 미사일 문제의 출구를 마련하는 때로 맞춰놓으면서 남북관계가 북핵문제에 연동돼 버린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사일 문제 해결의 출구로 유력하게 거론된 것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다.

결과적으로 6자회담이 풀리지 않는 한 남북관계가 복원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6자회담이 재개된 작년과는 앞뒤가 바뀐 상태인 셈이다.

이 때문에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하기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창의적인 외교적 노력은 빛나겠지만 남북관계가 돌파구로 기능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다만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6자가 공감할 경우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쌀 차관 제공이 6자회담에 촉매 역할을 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쌀 차관이 아직 대북 지렛대로서 유효하고 북한의 식량난이 수해로 심해진데다 남한으로부터 경공업 원자재도 받아내야 하는 북한 입장에 비춰볼 때 6자회담 복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통한 미래이익이 북한의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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