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좋아진다’는 말을 똑바로 세우자

한 해가 간다. 한 해를 보내는 사람들의 정서가 대개 그렇듯 2008년도 아쉬움이 크다. 우리가 맞닥뜨린 정치·경제·대외관계 현실을 고려하면 ‘아쉬움’이라는 표현도 좀 사치스럽다. ‘아쉬움’이 아니라 안타깝고 참담한 한 해였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MBC TV의 저질 프로 때문에 대한민국 공동체가 촛불사태로 가슴을 난자당했다.

북한은 금강산에서 50대 여성 관광객을 등 뒤에서 총을 쏘았고, 제멋대로 개성공단 폐쇄 협박을 늘어놓았다. 지난 10년 동안 습관을 잘못들인 남북관계의 적폐(積弊)가 잇달아 나타난 한 해였다.

그럼에도 ‘남북관계가 경색된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게 줄어든 것 같지가 않다. 민간인 여성관광객을 등 뒤에서 쏘고 개성공단 폐쇄 협박을 하면서 자해 난동을 부린 쪽이 ‘강경’인지, 잘못된 남북관계를 정상화 하기 위해 원칙을 지키려는 쪽이 ‘강경’인지, 아직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북한이 하자는 대로 하면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이며 북한이 난동을 부리면 ‘북한이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면 ‘남북관계가 경색된다’고 주장하고, 퍼주기는 찬성하면서 ‘북한주민들에게 식량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감시를 잘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식량지원을 할 때 ‘모니터링을 강화하라’고 주장하면 언필칭(言必稱) ‘대북 강경파’라고 몰아부친다.

이들은 북한문제를 다루면서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을 갈라서 보지 못하고, 대북정책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강조하면 강경파가 되고, 대충대충 절충하면 온건파라고 주장한다. 중도합리주의와 절충주의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무엇이 올바른 합리주의이며, 무엇이 땜질식 절충주의인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이같은 잘못된 대북정책이 10년간 지속되다 보니 대북정책의 목표도 흐지부지 되어 버렸고, 이들에게는 그저 남북당국간에 대화가 지속되고 있으면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첫째, 이들은 아직도 북한을 잘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남북관계가 잘 되는 것인지 정확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는 의미는 남북당국이 자주 만나 대화하고, 남북간 교류가 많아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남북대화와 교류는 ‘조건’일 뿐이지, 그 자체가 남북관계에서 성취해야 할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남북관계가 좋아졌다’라고 할 때 ‘어떤 기준에서 볼 때 좋아졌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준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 하기 때문에 지난 10년동안 ‘퍼주기’ 논란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기준’인가? 필자는 다음 5가지에 제대로 부합하느냐를 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남북관계가 북한의 핵 폐기 등 대량살상무기 해결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둘째, 남북관계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추동하는 데 합목적적인가?

셋째, 남북교류가 북한주민의 식량난 해소 등 주민들의 실생활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넷째, 남북대화와 교류가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 북 주민 인권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다섯째, 남북관계가 한반도평화체제 및 평화통일에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는 말의 뜻은 이상 5가지에 제대로 부합하고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이상 5가지는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남북 사이에 맺어진 각종 협정, 선언, 성명, 약속 등의 이행 수준에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느냐와 크게 관련이 있다.

남북대화, 남북교류는 이상 5가지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부합하지 못하면, 예를 들어 아무리 퍼주고 대화와 교류를 열심히 해도 이상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그렇게 퍼주어도 5가지 기준에서 볼 때 많이 미달되었고, 핵문제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햇볕정책은 실패했다’는 결론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반드시 내년에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장관이 말한 ‘남북관계 정상화’가 지난 10년처럼 회담을 위한 회담, 지원을 위한 지원이 아닌, 부디 이상 5가지 기준에 제대로 부합하는 ‘남북관계 정상화’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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