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위 내용과 전망

남북이 22일 열차시험운행 날짜를 잡고 쌀 차관에 합의하면서 북핵정국에 밀려 다소 불안해 보였던 남북관계가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어느 정도 조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핵 2.13합의 이후인 지난 2월 말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큰 틀에서 남북관계의 정치적 복원에 성공했다면 이번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제13차 회의는 경협을 통한 실질적 복원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5월 북측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됐던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을 1년 만인 다음 달 17일 갖기로 합의하고 대북 쌀 차관 40만t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남북 간 접점을 넓히고 협력기반을 다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측 회담 관계자는 회담 성과에 대해 “열차시험운행과 경공업 지하자원 개발협력을 일괄 타결하고 2.13합의 이행을 위한 남북대화 차원의 노력을 전개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의 해결이 지체되고 이에 따라 북한이 북핵 2.13합의에 따른 비핵화 초기조치 이행을 미루고 있는 정세에 비춰 이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쌀 차관 40만t을 5월말부터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우리측은 2.13합의의 초기조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시기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측에 수차례 통보한 것이다.

우리측이 이번 회담에 임하면서 2.13합의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기조발언과 위원장 접촉 등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된 조치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쌀 차관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상징성과 역할을 고려해 쌀을 제공키로 하는 한편 2.13합의 이행이 지체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쌀 차관 제공을 합의 이행과 연계,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지렛대로도 사용한 셈이다.

이는 북핵 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남북경협도 한반도 평화의 기반 위에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우리측 설명이다.

우리측 위원장인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브리핑에서 “앞으로 북측의 2.13합의 이행 여부와 정도에 식량차관 제공 시기와 속도를 연계할 수 밖에 없다고 북측에 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행사 하루 전인 5월24일 북측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무산된 열차 시험운행의 경우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진일보했지만 군사적 보장조치와 정식 개통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작년에도 북측 경협라인에서는 시험운행에 문제가 없다며 철석같이 다짐해 놓고선 정작 ‘군사적 보장 미비’를 취소 사유로 내걸었고 철도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의 확대를 위해선 1회성 시험운행이 아닌 개통을 통한 실질적 운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철을 밟지 않고 이번에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개통에 한발짝 다가서는 것은 물론이고 열차시험운행이 발효 전제조건으로 붙어 있는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사업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우리측은 대북 경공업 원자재를 6월부터 제공하고 이와 연결된 지하자원 공동 현장조사도 6월 중 실시키로 북측과 합의했다.

특히 경공업 원자재를 5월에 달라며 서두른 북측을 설득해 6월로 시기를 잡고 지하자원 현장조사를 맞물리도록 만든 것은 성과로 꼽힌다.

큰 틀에서 보면 ‘열차시험운행→경공업 원자재 제공→지하자원 개발협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협력 구도인 셈이다.

남북은 이미 합의해 놓고도 이행하지 못한 사업들의 경우 주로 그 협의 일정을 잡는데 주력했다. 추후 시기를 정하기로 합의한 접촉 일정까지 포함할 경우 10개 안팎에 이를 정도여서 회담이 폭주할 전망이다.

우선 제13차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이 오는 27일부터 이틀 간 열리고 5월 2∼4일에는 개성에서 경공업.지하자원 협력 실무협의가 이뤄진다.

나아가 제3차 개성공단건설 실무접촉도 5월중에 갖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개성공단의 통행.통관.통신 등 이른바 ‘3통(通)’ 문제를 비롯해 북측 노동력 확보 및 숙소 건설, 제2단계 개발 문제 등이 협의될 예정이다.

또 작년 4월 제18차 장관급회담 때 제기돼 그 해 6월 12차 경협위에서 합의한 한강하구 골재채취를 위한 실무접촉도 빨리 갖기로 합의했다.

이는 정전협정상 중립수역으로 그동안 방치돼온 한강 하구에서 공동으로 모래를 채취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130㎢ 가량인 이 지역에는 모래 10억8천㎥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북측 관심사인 제3국 공동진출과 관련한 실무접촉을 6월에 갖기로 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북측은 이번에 러시아 극동지역의 원유, 천연가스, 석탄, 목재 등 자원개발 분야의 남북 공동진출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자연재해방지 실무접촉, 과학기술협력 실무접촉을 6월중에 갖고 공동어로를 위한 수산협력실무접촉, 개성.금강산 출입체류공동위원회 등의 일정도 추후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실무접촉 가운데 임진강 수해방지, 한강하구 모래 채취, 공동어로 사업 등 열차 시험운행처럼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가 걸려 있는 의제들이 많아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열차 시험운행의 군사 보장이 향후 남북 경협의 확대 여부를 점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번 합의는 쌀 차관과 열차 시험운행, 경공업.지하자원협력 등 3대 현안에 중점을 두고 비교적 균형감 있게 이뤄진 편이지만 쌀 차관은 2.13합의, 열차 시험운행은 군사보장조치의 실천이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이에 따라 열차 시험운행이 첫 시험대가 되겠지만, 북한이 2.13합의 초기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5월말로 잡힌 쌀 차관 북송이 어려워지면서 이번 합의내용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2.13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비록 쌀 차관을 얻지 못하더라도 경공업-지하자원 합의의 틀을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2.13합의 이행에 진전이 있을 경우 회담이 줄을 이으면서 남북관계와 6자회담의 선순환도 가능해질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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