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추위 합의문 불발 배경과 전망

남북이 28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제11차 회의에서 군사적 문제와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 규모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문’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경협위가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채 이번처럼 ‘공동보도문’만 내놓고 종료된 것은 2003년 2월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회의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 경협위는 남북 당국 간 회담 사상 처음으로 지난 17일 문서로 의제를 교환한 데 이어 사전에 나흘 간의 위원급 준비접촉을 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물을 구체화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특히 이 결과는 경협위에 앞선 준비접촉에서 사실상 결정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번 회담에서 최대 쟁점은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와 경공업 및 지하자원 협력이었다.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는 우리측 관심사항인 철도.도로 개통과 수산협력, 임진강 수해방지, 개성공단 등 4개 의제의 진척을 막았다.

군사적 보장조치는 사실상 군부의 양해를 의미한다. 해당 사업의 지리적 공간이 군사분계선을 비롯한 군사적으로 민감한 곳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원래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의 경우 지난 7월 10차 경협위에서 10월께 열차시험운행과 도로개통식을 갖기로 하고 같은 달 말 열린 남북철도도로연결 실무협의회 제5차 회의를 통해 그 시기가 10월말로 구체화됐던 사안이다.

그러나 이들 합의에는 ‘군사적 보장 조치가 취해지는 데 따라’라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우리측은 11월에라도 개통식을 갖자고 요구했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하면서 연내에 이뤄질지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임진강 수해방지는 임진강 유역에 폭우가 올 때마다 우리측 경기 북부지방의 수해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2000년 8월 말 제2차 장관급회담부터 논의된 장기 미제로, 2000년과 2002년 각각 양측 특사의 서울 및 평양 방문 때도 거론됐다.

10차 경협위에서 8월 하순에 공동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역시 ‘군사적 보장조치가 조속히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수산협력의 핵심사항인 공동어로 문제는 그 이행장소가 서해상 민감한 수역을 포괄할 수 밖에 없어 군의 양해 수준이 아니라 군 당국 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만 이번 경협위 과정에서 북측 당국도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내부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 것으로 알려져 시간은 걸리더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맞물려 지난 6월 15차 장관급회담에서 시기 없이 개최에 합의한 장성급 군사회담이나 9월 16차 장관급회담에서 인식을 같이 한 군사당국자회담 개최 여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우리측 위원장인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회담 직후에 군사당국자 간 회담과 관련, “경협위와는 별개로 추진되고 있어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북측이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있었다”며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뉘앙스가 충분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의 쟁점인 경공업 분야 원자재 제공 문제는 10차 경협위 합의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우리측이 내년부터 북측에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하고 북측 지하자원 개발에 참여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우리측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대표단이 평양을 한차례 다녀왔다.

이견은 의복류, 신발, 비누 등 3대 경공업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우리측이 얼마나 제공하느냐에 있었다. 북측의 원자재 요구량이 우리 예상치를 넘어서면서 이에 대한 조율에 시간을 쏟았지만 합의에는 실패한 것이다.

북측은 이미 10차 경협위 때 필요한 원자재 규모를 제시했다.

그 규모가 31개 품목의 신발 원자재 6천만켤레 분과 비누 3개 품목 2만t, 의류 7개 품목 3만t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그에 따른 연간 지원액이 2천억원 안팎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우리 정부측은 ‘협상 중’이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박 차관은 “경공업 원자재 제공 및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한 물량의 이견 차가 좁혀졌지만 시간 부족으로 합의가 안됐다”며 우리 쪽에서는 물량 합의가 중요하지만 그 대가로 지하자원 개발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측이 북측의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문제는 사실상 경공업 협력과 맞물려 있기에 원자재 제공문제가 난항을 겪으면서 이렇다할 합의를 보지 못했다.

다만 지하자원 개발 및 투자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나 전문가가 북측 현장을 자유롭게 방문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우리측 요청에 대해서는 북측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16차 장관급회담에서 경협위 협의사항으로 설정해 놓았던 개성공단의 2단계 개발이나 과학기술 협력, 보건의료 협력에 대해서는 깊은 내용까지 협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마지막이 될 이번 경협위에서 합의문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과 장관급회담, 경협위 등을 통해 경공업ㆍ지하자원 협력과 수산협력 등 ‘상생의 경협’ 개념이 등장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아울러 농업ㆍ과학기술 등으로 경협 분야를 다변화하고 이날 남북경협에 핵심적인 인프라로 기능할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문을 연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그러나 이번 경협위에서 드러났듯이 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당분간 핵심 경협 사업이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전망이어서 군사 당국자 회담의 개최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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