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비선접촉은 과연 불필요한가?

최근 불거진 노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의 대북 비선접촉 사건은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안씨는 16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북한의 이호남 참사를 만나보니 ‘왜 나왔느냐’는 식이어서 황당했다. 그쪽도 황당해했다. 그래서 내가 ‘왜 공식라인을 찾지 않고 나를 불렀느냐?’고 했더니 그 쪽에서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만남은 30분만에 끝난 것이 전부였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권오홍씨 등의 과잉의욕이 만들어낸 자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간에 비선이랍시고 북한의 중요인사(?)와 줄을 댔다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믿고 ‘극비 접촉’에 나간 안씨나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다. 남북 비선의 만남에서 서로가 왜 나왔는지 모른다면 이거야말로 한편의 코메디가 아닌가. 아무래도 이번 안씨 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 같다.

남북 비선 접촉은 필요하다

이번 사건에서 남북한 비선 접촉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남북 비선 접촉은 과연 불필요한 것인가? 그렇진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북 비선 접촉은 ‘필요악’이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비선 접촉은 필요하다.

역대 모든 정부도 대북 비밀 루트를 개척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 때도 남북 비선 접촉이 있었다. 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만나 역사적인 수교교섭이 시작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김일성과의 극비접촉을 중앙정보부에 지시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정홍진 국장이 분단후 최초의 대북 밀사로 파견되었고, 이어 이후락 정보부장이 극비리에 김일성을 만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중이 관계정상화에 들어갈 경우, 전세계가 동서 진영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공산권 진영과 바로 맞닿은 남한의 안보를 우려했고, 이 때문에 김일성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비선접촉을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남북간 비선 접촉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 있어 왔다.

공식 외교라인 이외의 비밀 외교라인은 모든 나라에 다 존재한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며 일본도 마찬가지다. 또 외교라인이 공식라인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외교도 본질적으로 사람 관계이기 때문에 말이 더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라도 외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좋다. 한 국가의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밀 라인을 포함한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외교 넷트웍을 구축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일반적인 국가 관계에서도 이럴진대 하물며 북한은 오죽하겠는가? 남북은 한반도 전체 영역에서의 정통성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60년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집권자가 북한 문제를 관리하는 데 투명한 라인만 활용한다는 것은 ‘능력부재’이기도 하다.

이번 안희정씨 건도 비판의 대상은 비선 접촉 자체보다는 접촉 내용의 아마추어리즘이다. 또 남북간 비선접촉은 비선의 존재가 아니라 비선 접촉의 내용을 중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기 비선 접촉을 비판하는 것은 비선을 통해 오고간 내용, 즉 정상회담을 구걸하기 위해 5억 달러의 뇌물을 준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 북한정세에서 비선접촉이 특별히 필요한 이유

이 때문에 차기 정부는 비선 접촉을 양적으로 강화하고, 질적으로도 수준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북한 문제 관리의 일반적인 이유 외에 현 정세에서 요구되는 특별한 이유 두 가지가 더 있다.

그 하나는 북한의 다양한 고급정보 획득을 위해서다. 어느 시기, 어느 나라든 최고급 정보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특히 권력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고급정보를 확보해야 할 한국의 정보기관은 민주화 이후 과거 민주주의 탄압에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기가 많이 꺾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정보기관은 북한의 고급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한 정보기관 고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애국심과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정보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국민들도 사기를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사회질서와 기강이 급속하게 무너져 왔다. 고위층의 경우에도 부패가 만연하며 지방으로 내려가면 중앙의 권위가 더 이상 먹히지 않을 정도로 체제 통제력이 약화되어 있다. 용천폭발사고 등에서 보듯 언제 어떻게 대형사고가 터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접촉 투명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국가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한반도의 미래를 암흑 속에 맡겨두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급변사태에서 남한 정부가 주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양하면서도 고급한 수준의 비선들을 개척해야 한다. 북한 내부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더라도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공식, 비공식의 다양한 인적 네트웍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남북간 비선 접촉은 정부 공식기관 외에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경제분야, 학술분야, NGO 분야에서도 필요하다면 비선 접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냐는 판단의 기준은 필요할 것이며, 또 제반 법적인 문제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비선 접촉이 개인의 사적(私的) 이익이나 특정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포괄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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