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보다 돈 차별이 더 서럽다”

▲ 지난해 6·15 행사때 한국에 온 北 여성들(좌)과 평북 삭주군에서 일하고 있는 여군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데일리NK

데일리NK는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 5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2007년 현재 북한 여성들의 생활상을 들여다 봤다. 이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지난해 말 탈북한 여성들이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만강을 건넌 이 여성들은 “조선에서는 여성으로써의 삶이 철저히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여성들은 가정의 생계를 90%이상 책임지는 과중한 경제적 역할을 맡고 임음에도 여전히 가정 내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2000년대가 지나서는 여성들의 생활상도 많은 부분 변화를 겪게된다.▶ 전편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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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23세)-2006년 탈북, 평양 소재 대학 중퇴

안미란(43세)-2003년 탈북, 함북 회령 출신, 인신매매 피해

최경자(35세)-1997년 탈북, 함남 함흥 출신, 조선족 남편과 결혼

이은희(39세)-2000년 탈북, 평북 신의주 출신, 달리기 장사

강순녀(40세)-2002년 탈북, 양강도 혜산 출신, 인신매매 피해


◆ 돈으로 결정되는 北여성의 삶=북한 여성들의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도 역시 돈이다. 비록 허울뿐인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 간판마저 아예 뜯어내야 할 정도로 주민들 간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풍족한 배급을 보장 받는 중앙당이나 군의 고위 간부들, 장사를 통해 돈을 불리게 된 신흥 부자들이 상류층에 속한다면 농장 배급이나 소규모 장마당 장사에 의존하는 대대수 주민들은 하루 세끼 굶지 않은 일에 만족하는 처지다.

평양 소재 대학을 다니며 상류층 부모를 둔 친구들을 주변에서 많이 접했다는 김영순 씨는 “우리 학급에 있던 중앙당 고위 간부의 딸은 대학에 오기 전까지 일반 사람들과 격리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사는 줄 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전해준 북한 고위층의 생활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실상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그녀는 “한편으론 괘씸하면서도 신기하더라. 북한에서는 남녀차별보다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가 더 크다. 대학생활 하면서 눈물 흘린 적도 많다”며 얘기를 꺼냈다.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 없이 말했다. 집에 가면 꿀하고 유유가루, 달걀 노른자를 섞어서 얼굴을 팩을 한다. 한 개당 6천원씩 하는 얼굴이 하얗게 되는 크림을 매일 하나씩 바른다는 둥 나로써는 이해도 안 되는 얘기들을 해줬다.”

“일요일마다 엄마하고 개인 집에 가서 미안(얼굴 마사지)과 안마를 받고, 머리도 직발(스트레이트 파머)한다고 하더라. 자기는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고, 냉장고에 외화상점에서 사온 아이스크림을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먹는다고 했다. 살결을 곱게 하기 위해 돼지 발족(족발)을 먹으라고 일러주기도 했다.(웃음) 양산이며, 장화, 옷도 그렇고 모두 외제 물건을 쓴다. 엄마가 한국제 분쇄기(믹서기)를 샀다고 자랑 하더다. 예전에는 일본제를 많이 썼는데 요즘에는 한국 제품도 많이 쓴다고 한다.”

그녀가 전해주는 북한 상류층 여대생들의 소비 수준은 기자도 놀랄 정도였다. “간부집 애들은 콧날도 세우고 쌍까풀 수술도 하고, 이빨 교정까지 받는다. 화장품도 다 한국제를 쓴다. 어디서 샀는지는 말해주지 않지만, 밀거래로 산다고 얼핏 들었다. 확실히 좋은 걸로 화장하면 얼굴이 더 곱다. 그 아이들 사이에는 얼마 이하 짜리는 쓰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다.”

그녀는 상류층 여대생들은 현재의 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경제수준을 향유하기 위해 신랑감 물색에 열을 올린다고 말했다.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어느 외화벌이 상점 아들, 대학 총장 아들쯤 된다. 걔네가 준 선물을 보여줬는데 가죽케이스로 만든 책이랑 인형 등이었다. 내가 ‘넌 참 행복하겠구나’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잘사는 남자랑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정도 살면 남자 보고 결혼해도 되지 않느냐’고 되물으니 ‘이만큼 살면 더 잘사는 사람이 부러운 법이다. 대학도 졸업증 따서 시집을 더 잘 가기 위해 온 거다. 난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를 둔 김 씨의 학교 생활은 눈물겹기만 했다. 김 씨는 “시골 집에서 4만원씩 보내주는데 학교에서 걷는 돈 내고, 책 사고, 밥 사먹다 보면 돈이 모자란다. 대학생들은 규칙적인 생활에 매여 있기 때문에 다른 돈벌이는 생각도 못한다. 부모가 보내준 돈을 어떻게든 쪼개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 다니면서 양말 때문에 제일 힘들었다. 여대생들은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하는데 살양말(스타킹)이 하나에 2천원씩이나 한다. 구멍이 나더라도 도저히 새 것을 살 엄두가 안 나서 꿰매신고, 돌려 신으며 버텼다. 신발도 중국에서 들여온 한심한 것을 사서 굉장히 아껴 신고 다녔다. 좋아하던 아이스크림도 비싼 거는 달아서 계속 먹고 싶으니까 얼음에 사카린만 넣은 50원짜리만 정말 먹고 싶을 때 사먹었다.”

그 중에서도 그녀를 제일 못 견디게 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돈하고 권력이 있어야 인정받는 북한 대학의 풍토였다. “나는 시험기간이 되면 죽어라고 공부해서 만점 받았다. 그런데 중앙당 간부의 딸은 시험도 대충 보는데 담배 한 값만 고이면(뇌물로 바치면) 만점을 받았다. 그것이 열 받아 견딜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장사를 하며 평양에도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은희 씨는 “평양에 잘사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평양도 중앙당 간부들이 사는 중구역은 잘 산다고 소문났지만, 선교구역이나 대성구역같이 단층집으로 이뤄진 동네는 대부분 하루 장사해서 하루 먹고 산다”고 설명했다.

▲ 평양의 단층집들 ⓒ러시아 사진작가 아르데미 레베데바

이 씨는 “내가 아는 한 집은 남편은 직업을 구한답시고 놀고 아내가 집 살림을 떠맡고 있었다. 배급도 못받으니까 장마당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하루에 3000원 벌기도 힘들다. 하루에 밥은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국수로 때운다. 그 동네는 살림이 다 비슷해서 천연색(칼라) 텔레비전 있는 집도 하나 없다. 막내딸이 고등중학교 3학년이던데 배고프다는 말을 항상 달고 살았다. 아버지가 옆집에서 먹고 남은 개고기 찌꺼기를 삶았는데 딸하고 둘이 개걸스럽게 먹는 모습이라니…”라며 말을 흐렸다.

대학에 다닐 당시 황해도 지역으로 농촌지원을 나갔던 김영순 씨는 참혹한 시골 상황을 보다 못해 가지고 있던 옷가지를 다 내어주고 왔다고 한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살면서 강냉이 죽을 먹고 살더라. 황해도면 쌀고장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이렇게 사는지 정말 눈이 딱 감기더라. 농사를 지으면 군량미요, 비료값이요 다 뽑아가서 한, 두 달이면 배급받은 것도 다 바닥난다. 어디 가서 장사할 수도 없고 그렇게 굶고만 살아야 한다고 들었다.”

워낙 열악한 환경이다보니 여성들의 삶도 말 못할 지경이다. “지방 사람들은 샴푸란 말도 모른다. 우리가 머리를 감으니까 그게 뭐냐고 물어보더라. 비누 값이 비싸니깐 정어리 기름에 양잿물을 부어서 비누를 만든다. 그걸로 빨래하면 옷에 온통 정어리 냄새가 밴다. 여자들이 그런 비누로 머리를 감고 산다.”

김 씨는 “반면 잘사는 친구들은 샴푸하고 린스가 같이 나오는 일본 제품을 쓴다. 요새는 한국 샴푸를 주로 쓴다고들 하더라. 그걸로 머리를 감으면 냄새도 오래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북한에는 성문제가 없다?=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에 대해 개방돼 있지 않았다. 보수적인 사상이 의식 속에 남아 있기도 했고, 규율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 집단체제 하에서 성문제는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부세계의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며 성문제에 대해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여성들의 경우에도 성폭력의 위협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안미란 씨는 장사하는 여성들의 경우 혼자 몸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다보니 남성들의 성폭력 범죄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아주머니가 평양에서 함흥까지 달리기 장사를 했다. 그 사람말로는 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겪는다고 했다. 열차가 자주 서고, 연착되니까 밤중까지도 열차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열차에 전등이라고 있겠는가. 아주머니가 50살 정도 되는데도 남자들이 옆에 와서 몸을 만지고 그런다더라. 나중에는 여자들도 만성화되서 그냥 그런가 보다고 넘긴다고 한다.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당장 그만 두라고 했지만, 장사 아니면 살 방도가 없어서 그냥 다닌다. 달리기 하는 여자들은 다 그런 각오를 한다.”

특히 이런 문제가 공공연하게 알려진 경우는 여성들의 노동당 입당 문제다. 강순녀 씨는 “입당을 하게 되면 여자들도 큰 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입당하겠다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들은 집에서 놀면 여맹 조직 생활에 묶여서 피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입당한 여자는 웬만해서는 건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입당할 때 간부들에게 몸을 바쳐야 한다. 여자들이 입당했다하면 무조건 그런 일을 겪었겠느니 한다. 특히 군대에 갔다 오면 여자들은 무조건 입당하게 되는데 그게 기본이라고 한다. 보편화된 일이라서 누구나 인정하는 문제다.”

북한에서는 성매매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큰 도시의 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성매매는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이은희 씨는 “평양역에 나가보면 할머니들이 남자들한테 와서 대기숙박 안하냐고 물어본다. 대기숙박은 한마디로 민박을 말한다. 남자들이 생각이 있다고 하면 역전에 서 있는 여성들을 가르키며 ‘이쪽은 1만원, 저쪽은 2만 5천원’ 이렇게 알려준다. 여성들은 한 군데 모여 있지 않고 사람들 틈에 띄엄띄엄 서 있는다. 가격은 인물이 좋고 젊은 순서대로 매겨진다. 남자가 여자를 고르면 둘이 같이 가는 것이다.”

이어 “이런 여자 중에는 꽃제비들도 포함되어 있다. 식량난 시기에는 여자 대학생들도 길거리에 몸 팔러 나간다는 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파생되는 문제 또한 적지 않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성교육’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여학생들의 경우 실습과목에서 여자들의 위생과 건강에 대한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가르쳐줄 뿐 남녀의 성관계에 대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김영순 씨는 어느날 ‘애를 없어야 하는데 동무가 좀 도와달라’는 같은 대학 친구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북한 대학에는 임신 사실이 밝혀지면 퇴학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김 씨도 지금까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조선 여자들은 그런 교육을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다. 콘돔이라는 말도 모를 뿐 아니라 피임약이란 것도 없다. 동네 진료소에 가서 의사한테 고양이 담배를 한 값을 주고 사정을 했다. 결국에는 구역 병원의 산부인과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산부인과와 의사에게 돈을 고여야 한다. 병원에서는 밥도 안주기 때문에 먹을 쌀도 직접 들여놔야 했다. 3만원을 들여서 그 친구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기를 이런 수술을 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돈도 없고 창피하니까 병원에 못 가고 민간요법을 쓰다가 몸을 버리는 일도 있다. 조선 여자들은 그런 교육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달걀에 식초를 풀어놓고 마신다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애가 떨어진다는 식으로 듣는다. 의사 선생님은 몸을 버리니까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돈을 제대로 바쳐야 몸을 편안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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